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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세계무역센터 9·11테러는 디자인 탓?
세계무역센터는 디자인 탓에 테러의 표적이 되었다? 얼핏 터무니없는 음모론으로 들리겠지만 ‘디자인과 진실(북돋움)’의 저자 로버트 그루딘의 주장은 예사롭지 않다.

“좋은 디자인이 진실을 말한다면 나쁜 디자인은 거짓을 말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세계무역센터는 거짓 문화와 비극의 씨앗을 품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뉴욕항만청이 의뢰한 세계무역센터의 디자인은 시작부터 금권에 비틀렸다. 이 건물은 경제력을 과시하고픈 ‘자아도취적 대작주의’의 산물이었으며 보강구조와 대피시설은 임대료 이득에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역센터 앞 광장은 메카의 중정을 본 따 만들었고 건물 표면은 이슬람 양식으로 꾸며졌다. 이에 세계무역센터는 빈 라덴에게 ‘상업을 숭배하는 모스크’이자 오만한 도발의 상징물이 되었단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처럼 디자인이 악용되고 변질되는 사례는 적잖다. 위압적 공간으로 전락한 성 베드로 성당, 히틀러의 베를린 시민회관, ‘기름 먹는 하마’ 포드의 에셀 자동차 등이 대표적 예다.

반면 좋은 디자인은 사람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기술과 일체를 이루며, 감성과 자유를 확장시킨다. 저자는 차를 마시는 본질적 행위에서 주목한 센노 리큐의 검박한 다도(茶道)에서 그 전형을 찾는다. 또 팔라초 테 궁전과 찰스 임스의 가구, 구글 등은 디자인의 소통과 자기창조로서의 디자인에 충실한 작품들이다.

저자는 디자인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며 겉치장이 아닌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인문학의 틀로 본 디자인이란 점에서 신선하고 흥미롭다.

아울러 디자인을 내세우면서도 수해엔 무방비이며 삶과는 동떨어진 서울의 디자인 시정을 본다면 저자는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짐짓 궁금하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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