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석(49)은 스타이면서도 연극 무대에 꾸준한 애정을 갖고 있는 흔치 않은 배우다. 한두번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식이 아닌, 제대로 연극계에 발을 담근 연극배우로 봐도 무방하다. 얼마 전까지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로 무대에 올랐던 그가 이번에 ‘우어 파우스트(Urfaust)’에서 주연을 맡았다.
지난달 30일. 인터뷰를 위해 무대 뒤편 분장실에 들어서자, 각종 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격렬한 장면 연습을 마친 뒤였는지, 땀에 흥건히 젖은 흰색 와이셔츠를 걸친 그가 파스 냄새를 풍기며 활짝 웃고 있었다.
“배우들에게는 ‘파우스트’ 전편을 하는 게 로망이죠. 저도 ‘우어파우스트’를 통해 큰 인물에 도전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달리기로 결정한 건데, 막상 해보니 제가 생각한 파우스트가 아니었어요.(웃음)”
‘우어파우스트’는 괴테가 25세 때 쓴 파우스트의 초고다. 이번에 그는 독일의 젊은 연출가 다비드 뵈시와 호흡을 맞췄다. 다비드 뵈시는 독일 연극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로,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돋보이는 연출가다. 또 연극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마치 영화를 찍듯 무대 위의 장면을 구성하는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도 알려져 있다.
정보석은 뵈시와 작업한 소감으로 “우리가 해온 파우스트와 달라서 새롭다. (연출의) 나이가 젊은데, 젊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또 파우스트의 본고장에서 와서 그런지 극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데 굉장히 능하다”고 말했다.
그가 맡은 ‘파우스트’는 돈도 명예도 얻었지만 가슴은 텅 빈 중년 남자로 재탄생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학적이고 초인적인 파우스트와 달리 세속적 안락함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중생(衆生)이다. 그는 “중년이란 평생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시기”라며 “파우스트는 잃어버린 나를 구원해줄 한 여인을 만나지만, 그조차도 지속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개성 넘치는 파우스트라도, 묵직한 주제는 여전하다. 그는 “인간의 한 생애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유독 연극 무대에 애정을 가진 이유도 물었다. “(연기) 철학을 얻고 싶어 무대에 서는 거죠. 죽을 때까지 배우 하고 싶습니다. 마음만으로는 불가능하죠. 끊임없이 공부하고 개발해야 가능한 일인데, 연극은 작품 하나를 길게 연습하기 때문에 한 인물을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배우의 연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죠.”
끝으로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볼 땐 편하게, 즐겁게 보시고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을 것”이라며 “짧은 파우스트 안에 전편의 주제가 다 들어 있다. 쉽게 생각했다간 악! 하고 놀랄 만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연극 ‘우어파우스트’=9월 3일~10월 3일. 명동예술극장. 1644-2003.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