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명품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수집한 유명 작가들의 기발하고 급진적인 작품과 함께다. 피노 회장은 점당 수십억,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유명 작가 작품 22점을 모아 선보이는 ‘프랑소아 피노 컬렉션: Agony and Ecstasy(좌절과 황홀)’전 개막을 위해 내한했다. 특히 이번 전시 개막에는 ‘세계에서 작품값이 가장 비싼 작가’이자 전세계적으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56)까지 피노 회장의 컬렉션전 오프닝에 병풍(?)을 치기 위해 내한했으니 그의 가공할 만한 파워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과연 세계 미술계 영향력 1위(영국 잡지 ’아트뉴스’ 선정)다운 행보다.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 전관에 내걸린 회화와 조각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도발적이다. 자신의 연인이었던 포르노 스타 치치올리나와 키스하는 모습을 담은 제프 쿤스의 저 유명한 대리석 조각을 비롯해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죽은 소의 심장과 소머리를 넣은 데미안 허스트의 수조 작업도 국내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
가장 압권은 일본이 낳은 스타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남녀 조각상이다. ‘마이 론섬 카우보이’와 ‘밀크’로 명명된 두 점의 조각은 앳된 남녀 한 쌍이 자위를 하거나 절정에 오른 순간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중 ‘마이 론섬 카우보이’ 는 미술 경매에서 160억원에 낙찰돼 ‘아시아 생존작가 작품 중 최고가’에 오른 조각이다.
고교를 중퇴하고 아버지 사업(제재소)을 거들다 오늘날 루이비통그룹(LVMH)에 필적하는 명품 왕국을 건설한 그는 세계 정상급 미술품 수집가로 꼽힌다. 슈퍼 리치 컬렉터 중 늘 1순위로 거론된다. 또 크리스티 경매를 이끄는 미술사업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수집품으로 꾸민 전시에 참석한 그는 한 때 ‘명품 사냥꾼’으로 불리며 ’구치 M&A’ 과정에서 LVMH그룹과 가공할만한 혈투를 벌였으나(피노는 50억달러를 쏟아부으며 구치 인수에 성공, 오늘날 PPR그룹의 간판브랜드로 키웠다), 이제 칠순을 넘어 한결 여유로와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예리했다. 그 예리한 눈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뜰 만한 작가와 작품을 매섭게 골라내는 것. 그리고 그 아티스트를 명품 브랜드 키우듯 월드스타로 만들고 있다.
따라서 요즘 미술계에선 “피노가 손대면 그 작가는 단박에 스타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실제로 그가 관심을 갖고 작품을 ‘매집’하면 대부분 스타가 됐다. 제프 쿤스가 그랬고, 데미안 허스트가 그랬다. 또 무라카미 다카시도 그가 월드스타로 띄워놓았다. 요즘은 중국 작가에 꽂혀 있다. 쩡판즈가 대표적이다. 피노는 쩡판츠의 가로 9.5m의 대작을 비롯해 10여점을 한꺼번에 컬렉션해, 올 봄 홍콩 크리스티 경매 기간에 대규모 전시를 열기도 했다. 또 황용핑, 장환 같은 작가도 밀고 있다. 한국 작가로는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있는 이우환 화백이 유일하다.
조명계 홍익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피노 회장이 미술에 열광하는 것은 명품 패션이 예술과 맥이 통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아트는 규범을 뛰어넘어 도발이 가능하다. 그리고 무한의 가치를 지닌다. 명품의 정점에는 결국 미술이 있다”고 분석했다.
총 2000여점에 달하는 피노 회장의 컬렉션 중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림은 없다. 대신 이 시대의 문제점을 가차 없이 비틀거나 꿰뚫은 파격적인 작업, 기이하고 불편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 자신이 명품 재벌임에도 자본가를 아프게 비판하고 풍자한 ‘날 선 작품’을 선호하는 것은 적잖이 이채롭다. 물론 이 또한 고도의 전략일 수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ㆍ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