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해군기지가 반대하는 시민들의 불법적 저항에 막혀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만큼 우리 사회의 위기를 잘 보여주는 일도 드물다. 일반적으로 군사기지의 건설과 같은 국방업무는 일반 시민들이 간여할 일이 아니다. 드러내놓고 북한을 따르는 세력에 밀려 기지를 건설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현 정권의 본질적 문제를 새삼 확인한다.
정부와 해군의 민망스러운 대응에서 특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제주도 해군기지가 미국 해군을 위해서 건설된다는 반대파의 주장에 대해 정부와 해군이 그렇지 않다고 해명한 것이다. 이런 해명은 한미동맹을 허무는 짓이다. 동맹국인 미국의 군대가 우리 군사기지들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니, 무슨 소리인가? 미리 미국 해군이 쓰지 못한다고 선언하면, 여러 부작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미국이 힘든 전쟁 끝에 일본을 이겨서 우리는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6ㆍ25 전쟁에서 우리를 구해주고 줄곧 지켜준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의 군사적 도움이 워낙 절실하므로, 지금도 우리는 전시에 미군 사령관에게 작전을 맡기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 짓는 해군기지를 미군은 쓰지 못한다고 미리 못을 박아서 북한을 따르는 세력을 달래려는 정부와 해군의 행태는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동맹은 신뢰가 바탕이며 큰 책임이 따른다. 미국의 신뢰를 잃을 짓을 가볍게 하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북한의 공격을 무릅쓰고 우리를 지켜달라고 미국에 부탁할 수 있겠는가? 그런 동맹국을 위해 미국이 병사들의 목숨을 내걸고 선뜻 도와주겠는가?
이것은 결코 한가로운 얘기가 아니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안이다. 근년에 미국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다. 그래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점점 큰 짐이 되어 왔다.
지금 ‘국가적 쇠퇴(national decline)’가 미국 사회의 중심적 화두가 된 것도 근본적으로 그런 짐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안들 가운데 비교적 쉬운 것은 해외에 주둔한 미군의 감축이다. 이미 그렇게 하자고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지금 미국의 군비는 미국의 국력에 비겨 많은 편이다. 냉전은 미국이 온 세계에 군사력을 투사하도록 만들었고,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은 군사력을 줄이지 않았다.
폴 케네디가 지적한 대로, 과도한 군사적 확장(overstretch)은 강대국의 쇠퇴를 부른다. 따라서 미국은 차츰 해외의 군사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한국에 주둔한 미군이 먼저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6ㆍ25 전쟁 직전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의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은 한국을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로 여기지 않았다.
일본만 지키면 미국의 영향력을 서태평양에 투사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보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주한미군은 많이 철수해서 실질적인 억지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할 경우, 우리가 맞을 위험은 이내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당연히,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 짓지도 않은 해군기지를 미군이 쓰지 않는다고 미리 선언하는 것은 미국의 신뢰와 호의를 얻는 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