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투어 마치고 돌아온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현대차·우리금융 덕 투어 성공”후원자 영역 전세계로 확장 시사
예술 잠재력에 기업 자본 결합
오케스트라 수준 일취월장
한국 클래식음악계 시너지 막대
티켓값 인하 등 대중화 효과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후원자를 모집합니다.”
얼마 전 유럽 투어를 성공리에 마무리한 서울시향이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올라서기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시향은 “국내 기업의 후원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무대로 후원을 유치할 것”이라는 향후 계획을 밝혔다.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명훈 예술감독은 “이건(서울시향을 후원하는 건) 100% 되는(성공하는) 투자”라고 공언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투어를 성공리에 마친 건, 현대자동차의 든든한 후원 덕이었다. 앞으로 더 잘하려면 탄탄한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우리 오케스트라의 실력은 내가 책임질 수 있다”며 잠재력 있는 예술과 자본이 결합하면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 서울시향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상징인 DG(도이치 그라모폰)와 음반 계약을 맺고, 세계 3대 페스티벌로 꼽히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에 재초청되는 겹경사를 맞았다.
이처럼 특정 소수를 위한 고급 문화로 인식돼온 클래식 음악이 기업들의 활발한 후원에 힘입어 점차 대중적인 문화로 스며들고 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잠재력과 기업의 자본이 결합하니, 한국 클래식이 날개를 달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국내 클래식 음악의 저력을 눈여겨본 몇몇 기업의 지속적인 후원이 각종 콩쿠르 수상, 투어와 레코딩 등 가시적인 성과를 안겨주고 있다.
클래식 음악계에 기업 메세나(mecenatㆍ문화예술지원활동)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는 ‘금호영재’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지원해온 손열음, 조성진 등 ‘금호영재’가 지난 6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대거 수상하며, 기업 메세나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드높였다. 겉으로만 보면 개개인의 역량이 빚은 성과지만, 사실 이들이 세계 무대 정상에 오르기까지 악기, 항공권, 학비 등 기업의 든든한 후원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서울시향이 네덜란드(사진은 콘세르트헤바우홀 공연)와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등 유럽 4개국 투어를 성공리에 마쳤다. 서울시향은 이번 투어에서 파이낸셜 타임즈, 텔레그라프 등 유럽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사진=서울시향 제공> |
올해 정명화ㆍ경화 자매가 예술감독을 맡은 클래식 축제 ‘대관령국제음악제’도 국내 최초로 ‘데일리 스폰서십(daily sponsorship)’을 선보였다. 매일 다른 기업이 그날의 공연을 후원하는 것으로, 세계 유수의 축제에서 정착된 후원 방식이다. 지난해 한 자릿수 기업이 후원했던 축제는 올해 23개사나 힘을 보탰다. 축제의 홍보를 맡은 커뮤니크의 신명 대표는 “금전 후원 외에도 피아노, 차량, 음식 등 다양한 종류의 후원이 축제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서울시향은 기업 후원으로 투어를 성사시켰다. 유럽 투어는 현대자동차가,일본 투어는 우리금융그룹이 거액을 지원했다. 서울시 출자금을 재원으로 삼는 시향이 투어 비용을 자체 조달하는 건 불가능한 일로 기업 후원이 절대적이었다.
투어는 물론 정기 공연도 자체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2006년부터 하나금융그룹이 지속적으로 시향의 정기 연주회를 후원해왔다. 병원, 학교, 공원 등 서울시 곳곳을 찾아가는 ‘우리동네 실내악(찾아가는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2006년부터 우리은행이 후원해온 이 음악회로, 시향은 대중이 어려워하는 클래식 공연의 문턱을 한층 낮출 수 있었다.
공연 티켓의 가격경쟁력을 갖춘 것도 기업의 후원 덕분이다. 보통 10만원대인 R석의 경우, (시향은) 5만~6만원 선으로 최대 40~50% 가격을 낮췄다.
서울시향 홍보마케팅팀 이경구 팀장은 “기업 후원이 클래식 공연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기회를 넓힌 계기가 됐다.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접할 수 있게 해 클래식 대중화에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투어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의 가능성을 체감한 서울시향은 앞으로 해외 후원도 겨냥한다. 2012년 북미 투어, 2013년 유럽과 중국 투어를 돌며, 현지서 개인 후원 회원을 모집할 계획이다. 김주호 대표는 “‘서울시향 프렌즈 USA’ 등 해외에 서울시향을 후원하는 단체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조민선 기자/ 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