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때 읽을만한 책
모처럼 둘러앉은 명절상에 빠지지 않는 게 세태 이야기다. 그 중 하나가 88만원 세대, 아픈 청춘, 취업전선 얘기일 듯 싶다. 무한경쟁의 현실 앞에 내던져져 좌절하고 포기하는 젊음, 그 숨겨진 에너지를 읽어내는 일은 우리 사회 가장 예민한 부분처럼 보인다. 개성적인 글쓰기를 통해 시대를 투영하고 있는 80년대생 젊은 작가의 도발적인 소설을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읽힌다. 추석 고향길, 한 권의 소설로 시대의 담론을 리드해보자.김사과의 장편소설 ‘나b책’(창비)은 한 마디로 서늘하다. 구타와 폭력을 아무런 저항 없이 몸으로 받아내는 약한 자의 현실은 피튀기는 폭력보다 더 시선을 피하고 싶다. 지방 소도시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살아가는 중학생 ‘나’,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막막한, 아픈 동생 때문에 더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b’, 책에 빠져 지내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책’이 각자의 임계점에서 만나는 이야기다. 무정부주의적 색채를 보이는 김사과는 반복되는 폭력의 일상, 지겨운 가난, 그런 현실을 죽이고 싶은 욕구를 반복되는 문장과 단어를 구사하며 고통의 낮고 거친 숨소리를 전한다.
고예나의 ‘클릭 미’(은행나무)는 ‘견딞’의 역설을 얘기한다.
수도권 중위권 대학에 합격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단칸방 생활을 하는 나에게 캠퍼스 생활이란 남의 얘기다. 졸업 후엔 인터넷 논술강사로, 밤에는 키스방으로 투잡을 뛴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못 견뎌하는 건 아니다. ‘스트레스가 쌓여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럴수록 그 충동은 일에 대한 의욕’을 더욱 불태워준다. 키스방에서 정말 극복하기 힘든 아저씨들과도 키스하기 전 대화를 많이 나누어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무언가를 견디고 있다는 자체가 위안이다. 어느날 취재차 키스방을 찾은 기자가 질문을 한다. “꿈이 있나요?” “이렇게 안 살고 싶은 게 꿈이에요.”
2011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윤고은의 소설집 ‘1인용식탁’(문학과지성사)은 우리시대 병적인 불안을 현미경적 시각으로 포착한다.
표제작 ‘1인용식탁’에서 혼자 먹는 식사는 ‘권투가 벌어지는 링’으로 인식된다. 꿋꿋하게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고깃집에서든 어디서든 투쟁적으로 먹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혼자 씩씩하게 밥먹는 법을 배우려 학원에 3개월 20만원을 주고 등록한다. 그러던 중 동료의 점심 대열에 끼게 되지만 나는 그 관계 속에서 더 지쳐간다. 무리에서 나와 나는 다시 혼자 먹는 자유를 느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