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화계의 거두.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최태지 예술감독이 만났다. 얼마전 유럽투어를 성공리에 마치고온 서울시향의 하모니가 역사상 최고의 기량에 올라선 국립발레단의 몸짓과 결합한다. 작품은 클래식 발레의 문법을 뛰어넘은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김주원, 이동훈 등이 총집결하며, 객원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용걸 교수가 합류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무용수들, 거기에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 연주까지 더해져, 강렬한 시너지 효과를 예고한다.
8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예전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있을 때, 발레 지휘는 딱 한번 했다. 원래 발레 지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무래도 템포에 얽혀 움직이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지휘자에겐 재미가 덜했던게 사실”이라고 운을 뗐다. 그럼에도 국립발레단의 제의에 흔쾌히 응한 이유로는 “국립발레단의 급속한 기량 상승에 너무 놀랐다. 우리 오케스트라가 그랬듯, 짧은 시간에 한국 발레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 그 자체로 정말 기분 좋았다.”고 전했다. 최태지 단장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항상 음악이 문제였는데 정명훈 선생의 지휘로 편하게 단원들이 몸으로 이야기 할 수 있어 기쁘다”고 화답했다.
로미오를 맡은 김용걸 교수는 “2008년 파리에서 정 선생의 지휘를 보고, ‘저 연주에 맞춰 춤추면 어떨까’ 생각하며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며 “당시에는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춤출 수 있게 돼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번 작품은 ‘발레 같지 않은 발레’다. 마치 영화를 보듯, 스토리텔링이 탄탄하고, 영상미 넘치는 비주얼이 재미를 더한다. 발레는 딱딱하고 어려운 소수 계층의 클래식 문화라는 인식을 깨부술만한 대중적인 작품이다. 극중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맨스 신에서는 이례적으로 키스신도 등장한다. 마치 19금 영화에 나올법한 러브신은 ‘발레’라는 장르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로 보인다.
작품은 ‘포스트 클래식 발레’로 볼 수 있다. 테크닉보다 연기가 강조되는 발레다. 에로틱하면서 진실이 담긴 춤사위가 특징이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리드미컬하고 스펙터클한 느낌을 강조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통속적인 해석도 벗어났다. 안무가 마이요는 “로미오가 사랑에 빠진 남자라면 줄리엣은 사랑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극은 로미오 보다 줄리엣의 비중이 크며, 그동안 지고지순하고 여성미 넘치는 줄리엣을 넘어 주도적인 자아가 강한 여성으로 재창조됐다.
10.27~30. 예술의전당.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사진제공=국립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