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노인 데리고 명부에 하소연하여/내세에는 부부간 처지를 바꾸어서 내가 죽고 그대 천리 밖에 살아남아/당신으로 하여금 슬픈 마음 알게 하리라” 1842년 추사 김정희가 귀양지 제주도에서 아내의 부음을 듣고 지은 시다. 상처(喪妻)의 회한이 애절하다.
시대는 흘러도 변치 않는 게 부부간의 사랑과 이별이다. 조선시대 부부유별이 얼음벽처럼 차갑고 두터웠다 해도 애틋한 정마저 없었던 건 아니다. ‘부부’(문학동네)의 저자인 서울대 국문과 이종묵 교수는 옛 문헌을 통해 부부의 의미를 살피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 결혼에 대한 관념과 제도는 오늘날과 다르다. 혼인은 개인이 아닌 가족과 국가의 대사였으며 ‘남녀상열’은 음탕한 풍속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남녀의 사사로운 정을 금하는 등 결혼에 대한 금기는 외려 금기를 깨는 일이 흔했음을 반증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옛 선비라 하여 모두가 목석은 아니었다. “오늘밤 촛불 켜지 않았더니/낭군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향긋한 숨소리만 듣다가/아침에 거울 보고 하는 말/ ‘어찌하여 뺨에 바른 연지가/낭군 얼굴에 가득 묻었나요?’” 신혼을 다룬 이안중의 ‘달거리 노래’에는 농염하지 않고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다.
또 아내가 늘 수동적인 역할에만 묶인 것도 아니었다. 내조는 남편을 바르게 이끄는 적극적 역할을 의미했으며, 일례로 남편의 잘못을 조곤조곤 따지는 강정일당의 편지에서는 날카롭고 매서운 기품마저 느껴진다.
“부부는 인문학과 문학 연구의 가장 큰 본령”이란 저자의 말처럼 사랑이 인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만큼 옛 사람의 삶과 생각을 헤아리는 일은 흥미롭고 의미 깊다.
물론 거기엔 남성중심주의적 시각이 많지만 “소는 누가 키우고?”라며 윽박지르는 못난 남자가 아니라면 부부의 도리가 차별ㆍ굴종이 아닌 예의ㆍ공경에 있음을 읽기란 어렵지 않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