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의 즐거움주영하 외 지음휴머니스트
한국 영화속 인물 캐릭터생명·우주의 탐구 동의보감…
역사·예술 등 다양한 관점서
22명 지식인들 개성있는 집필
한국인 정체성 의식 등 재구성
한국학은 최근 10년 사이 국내선 물론 한류 붐을 타고 외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말이 됐다. 그러나 정작 한국학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 관한 학문이라면 당연 ‘한국적인 것’들로 짜여지게 마련이므로 가장 한국적인 것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22명의 지식인이 답을 내놓았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물론 현대 문화, 철학, 종교, 과학, 의학, 경제 등 우리의 생활을 이루는 요소 요소를 다시 파고들어 한국적인 것의 정수를 모았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탐색한 한국적인 것의 부분들의 조합이 전체의 얼굴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또 가장 한국적이라는 것도 오늘에 비춰보면 변화의 과정에 있다. 그렇더라도 몽타주는 하나의 한국인 자화상은 될 수 있다.
시인 장석주는 우리의 정서라고 흔히 말해져온 ‘한(恨)’을 파고든다.
시인은 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 한국인의 눈물겨운 피학, 가학은 타자에게 은혜를 베풂으로써 찢긴 나의 마음을 감싸고자 하는 수동적인 되갚음으로 본다. 저자는 한국인의 내면에 집단적 정서로 구조화된 슬픔과 정한의 세계와 구체적 생활감정을 하나로 꿴다. ‘아리랑’에선 떠난 임에 대한 원망, 애절함과 함께 질투, 배신, 절망, 아픔, 복수 등을 다 끌어안고 꿋꿋하게 일어서는 능동적 슬픔을 읽어낸다. 시인이 모국어의 원형 격으로 든 백석의 시, 해방 뒤에 널리 불린 ‘동백아가씨’도 시인의 표현대로 ‘어룽진 슬픔의 문하’에서 서성대는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하지만 그 마음 안에는 꿈틀임이 있다.
그런 피동성이 지난 한 세기를 거치며 능동성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일궈내면서 자신감은 충만하고 흥은 많아졌다. 역동성은 한국인의 대명사가 됐다. 이는 흥청거림, 허세, 들뜸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한국 음식은 어떤가.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국물 많은 국과 짜고 매운 반찬의 비밀은 밥에 있다고 말한다. 한국 음식의 반찬은 따로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한국 음식의 진짜 맛은 입속에서 밥과 밥찬을 비벼 먹는 데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 음식의 핵심은 쌀밥이다. 쌀밥 외에 먹을거리가 풍족해지면서 밥상의 모습도 쌀밥 중심에서 다른 반찬 중심으로 옮겨가고 반찬의 간도 바뀌기 시작했다. 만들 수 있는 온갖 요리로 한 상 가득 채워야 직성이 풀리고 절대미각은 사라지고 비슷한 맛, 더욱 자극적인 맛, 온갖 재료를 비벼버리는 맛을 더 좋아하는 양상인데, 저자는 이를 모두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되갚음에서 나온 심리로 해석한다. 쌀에서 출발했던 한국 음식의 오래된 문화적 구조도 변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꼽히는 ‘동의보감’은 대중적인 유산이지만 한국인의 일상과 동떨어진 텍스트이기도 하다. 고미숙 고전평론가는 ‘동의보감’은 단순히 질병과 처방을 위주로 한 임상서가 아니라 생명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 탐구서라고 말한다. 전통의학의 상징이 되어 박물관에 갇혀 있어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는 가장 한국적인 집, 한옥에서 상대주의 국민성을 읽어낸다. 고려의 노장사상에 유교의 형식미가 가미되면서 단순하고 정형화됐으면서도 변화무쌍한 다양성을 지닌 한옥은 한국인 특유의 혼성기질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창과 문, 마당과 채의 꺾임, 바람과 사람의 길 등을 살펴 규칙성을 거부하는 다양성을 찾아낸다.
한국인의 캐릭터를 영화배우 송강호, 설경구, 전도연을 통해 들여다본 김영진 명지대 교수의 탐색도 흥미롭다. 한국인들이 열광하며 공감하는 캐릭터는 욕망과잉의 사회, 부조리하게 작동하는 사회, 약간씩 돌지 않으면 이상한 현실에서 송강호처럼 낄낄거리며 돌파하든, 설경구처럼 우직하게 내달리든, 전도연처럼 깊은 좌절과 광기에서 자기 주체성을 깨닫든 하는 인물들이란 것이다.
맹목적 민족적 자긍과 자조 사이의 단순한 균형잡기를 넘어 2000년 이후 달라진 한국,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조명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롭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