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다섯 번째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시간과 공간의 재배열 등독특한 시어·난해한 화법
잠재세계와 소통 시도
독자에 상상의 나래 펼쳐줘
‘선과 손이 뒤섞인다/선이 손을 넘고//손이 선을 넘는다. ’
시인 이수명의 다섯 번째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문학과지성 시인선)을 열며 쓴 시인의 말이다. ‘선’과 ‘손’의 경계가 없어진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시인은 이 의문을 68편의 시를 통해 풀어나간다.
‘검정에서 노랑까지/모든 기호들은 기호들 사이에 있고/기호들 사이에 경계가 없어서/나의 발음이 부서져간다./나는 턱을 내린다. 지평선 아래로// ( ‘발음연습’)
시인의 발음연습을 ‘선’과 ‘손’에 대응해보면, ‘선’ ‘손’의 표기는 무의미하다. 둘이 뜻하는 건 결국엔 같을 수도 있다.
시편들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시어 하나를 꼽자면, ‘손’을 들 만하다. 손은 정체성, 존재감으로 통한다. ‘내가 손을 흔듦으로써 나는 손을 흔들 뿐만 아니라 내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인다.’( ‘내가 손을 흔들기 일쑤인 것은’)
손을 흔드는 행위속에는 나의 인식, 의지가 함께 들어있다. 손은 여기서 더 확장된다. 너와 나를 연결하기도 한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중략)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고/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잔디밭에 떨어져 있는 손을 줍는다. 손을 옮긴다.//(중략)불이 붙은 손 불 속에서 시린 손// 불은 손을 구해야 하고’( ‘손을 옮기며’)
또 하나 반복되는 시어가 ‘물고기’다.
‘우리는 한 사람씩 한 방향으로 지문 없는 손을 섞었다/물고기 한 마리가 접시들 사이를 헤엄쳤다’( ‘물고기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하여’)
‘나를 헤엄치던 물고기, 나의 안에서 밖에서 나를 부풀리고 부피가 되게 했던 것,(중략)물고기가 아직 역사적 취향이라 한다면//물고기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물고기는 어디에’)
‘하나의 지느러미가 나를 뒤덮는다. 하나의 육체로 나는 육체에 대꾸한다. 하나의 물고기로 집결했을 때 나는 물고기가 되려 한다’( ‘물고기의 기원’)
명확치는 않지만 유동성을 지닌 물고기는 어떤 에너지, 힘, 방향성을 환기시킨다.
이수명의 시를 이해하는 것은 우선 쉽지 않다. 일상적 언어를 지나 시적 언어로서도 낯설다. 그럼에도 하나의 시어를 붙잡고 들어가다 보면 시인이 바라보는 지점이 어렴풋하게 보이기도 한다.
평론가 신형철은 시집 해설에서 “자아, 체험, 추억, 재현 등과 같은 프레임으로 읽어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일찍이 본 적 없는 새로운 우주를 펼쳐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이수명의 시집은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하 문지 시인선) 399번째 책으로 300번대 마지막을 장식했다. 다음 400호 시집은 301~399호에 실린 시 가운데 ‘시인의 초상’이라는 주제에 맞춰 80여편을 골라 기념시집으로 나온다.
1978년,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제1호로 나오기 시작한 문지 시인선은 만 33년 동안 해마다 평균 11.8권의 시집을 내며 민음사, 창작과비평 등의 시인선에 앞서 가장 먼저 400호를 내게 됐다.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교수는 계간 ‘문학과사회’ 좌담을 통해 문지 시인선의 초기 입장을 ‘문학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사회와의 긴장을 통해서 반성과 통찰의 장으로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이 문지의 입장이자 태도’로 정리했다.
이런 문지의 태도는 황동규, 마종기, 정현종, 오규원의 시집에서 확인된다.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이성복, 황지우, 김정환, 최승자, 김혜순이, 1980년대 말에는 황인숙과 기형도가 두 축을 이뤘다.
정 교수는 “1990년대 이후의 문지 시인선은 전위적인 시, 전통적인 시를 모두 받아들이는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됐으나 세 가지 기준이 있다면 인식의 새로움, 절실성, 정직성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