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도자들의 책무가 막중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훌륭한 지도자들을 가졌던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갈렸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정치지도자들의 역할론을 되돌아보게 하는 요즘이다. 우리나라 국민 사이에 기성 정치를 불신하고 새로운 지도자 출현을 반기는 경향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의 이른바 ‘안ㆍ박 돌풍’이 좋은 예다. 오는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 변호사의 높아진 지지율이 표로 직결될지 여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박 변호사가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정치 경력이 전무한 이들이 눈앞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인을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물갈이 여론’이 아주 높은 것이다.
2008년 총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현역의원 교체론이 높게 나타났었다. 실제 총선에서도 현역의원 상당수가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다. 내년 총선에서 이런 경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내년 12월의 대통령선거 주자들에 대한 지지도에서도 안 교수의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할 만하다. 대선 주자들 가운데서 그동안 줄곧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오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지를 넘볼 정도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전개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식은 상당 수준 높아졌는데 정치는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TV대담에서 밝힌 대로 스마트 시대에 정치는 아날로그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고도 말했다. 정치불신과 신인돌풍에 대한 책임론을 거론한다면 이 대통령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정치불만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여당인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제1야당인 민주당 등 야당에 대해서도 모두 국민이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점에서 기성 정치 모두의 공동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실세 권력의 정점에 있는 만큼 누구보다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나타날 판세결과가 과거 어느 선거 때보다도 초미의 관심을 모으게 한다. 신인 돌풍이 거품이었는지, 대세였는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오는 10월 서울시장 보선 결과가 정치신인 등장 성패의 전초전이 될 공산이 높다. 서울시장 선거는 대선 다음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에 박 변호사가 야권통합 단일후보로 나서 여당 후보를 누르고 시장에 당선된다면 그 결과가 총선과 대선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선거 과정에서 드러나겠지만 문제는 서울시장을 바라보는 박 변호사의 시정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알려진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안 교수의 경우도 그렇다. 국민의 기성 정치 불신과 신인 등장 환영은 이성적이 아니라 감성적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과정에서 국민의 현명한 이성적 판단이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