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요 대학 2012학년도 수시 모집이 최근 마감됐다. 대학입시를 향한 연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수시 경쟁률만 봐도 대학입시가 왜 ‘전쟁’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수도권 주요 대학 평균 경쟁률이 33 대 1이다. 모집단위별로 차이는 있지만 50 대 1, 100 대 1은 기본이고, 500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곳도 있다. 확률로만 따지면 합격 가능성이 1%도 채 되지 않는다. 이쯤이면 실력도 중요하지만 천운이 따라야 합격할 수 있다. 수시 전형은 대부분 논술고사라 수험생의 능력을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측정해낼지도 의문이다. 대학입시가 로또와 다를 게 없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다. 고교생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고, 고교 졸업생 수보다 대학 정원이 많은 나라다. 그런데도 대학 들어가기가 로또 당첨 확률보다 낮다. 사교육이 판을 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런 황당한 현상의 출발점은 불합리한 대학입시 제도다.
무엇보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이 너무 쉽다. 학생들조차 ‘물 수능’이라 부를 정도로 변별력이 낮다. 최근 9월 모의 수능을 치른 학생들의 반응이 단적인 예다. 너무 쉬운 출제에 ‘경악’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비중이 높은 언어, 수리, 외국어(영어) 영역 고사의 경우 한 문제를 틀리면 한 등급씩 내려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 과목별 만점자가 2%에 달했다.
11월 본 수능도 그런 정도의 난이도가 유지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한 문제라도 실수를 하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진다. 수능점수 1, 2점 차이에 입학 가능 대학의 수준과 인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열심히 공부해 좋은 평가를 받는지 경쟁하는 게 아니라 누가 실수를 적게 하느냐의 싸움이다. ‘실수하지 않는 수능’을 지도하는 과외가 등장하고, 전문가들이 전하는 입시 최대 전략은 ‘실수 줄이기’란다. 이렇게 살 떨리는 평가가 또 어디에 있을까.
더욱이 실수를 만회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 기회가 온다. 그런 점에서 수능은 공정하지 못하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평가다. 요즘 수험생에 대한 최상의 격려 구호는 ‘수능 대박’이다. 실력보다 운으로 시험을 치르라는 소리다. 하긴 로또에 당첨되듯 수능 대박을 터뜨리는 학생들이 종종 나온다니, 꼭 틀린 말은 아니다. 대부분 학생들이 이런 물 수능에 목숨을 건다.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제도다.
대학입시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핵심은 학생 선발권을 각 대학에 전적으로 일임하고, 교육 당국은 손을 떼면 그만이다.
우선 수능을 국가 주관 대학입학자격고사 정도로 비중을 대폭 낮춰야 한다. 다만 지금처럼 과목을 줄이지 말고 고교 전 과정에 걸친 평가라야 의미가 있다. 그리고 대학별로 일정 기준 이상 수능득점자를 대상으로 자체 전형을 실시하면 된다. 어학이든, 수리든, 탐구든, 봉사든 각 대학의 건학이념과 인재양성 특성을 감안한 전형을 통해 학생을 뽑자는 것이다. 망국적인 사교육 부담을 줄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렇게 대입제도를 바꾸면 대학 서열화 문제도 자연스레 해소된다. 수능점수 1, 2점을 사이에 두고 대학과 학과를 서열화하고 그 점수에 맞춰 진학을 결정하는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방식을 언제까지 답습할 수는 없다. 대학 교육 역시 달라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든 대학이 종합대학이고, 서울대학이 될 수는 없다. 인문, 사회, 경제, 공학, 의학, 문화, 예술 등으로 대학이 다양하게 특화되고 인재를 배출해야 국가경쟁력도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