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이란 6000년경 전에 어떤 인류 집단의 정신에 발생한 어떤 변화를 지칭한다. 타락은 이 사람들이 자아에 대하여 강하고 예민한 인식을 발달시킨 역사적 순간이었다. 타락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나‘ 또는 개인성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심화되는 것이다”
현대 인류가 앓고 있는 우울, 공포, 고독 등의 정신적 문제가 ‘자아 인식’이 시작되면서 발달했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영국 심리학자 스티브 테일러는 책 ’자아폭발-타락‘(다른세상 펴냄ㆍ원제 ‘The fall’)에서 “지난 6000년 동안 인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 왔다”며 “이러한 모든 광기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자아폭발‘”이라고 말한다.
중앙아프리카 피그미족과 3년을 산 영국의 인류학자는 피그미족에게 삶이란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며 근심 걱정이 없는 대단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미국의 작가 진 리들로프는 남아프리카의 타우리파 인디언들에 대해 “내가 본 이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썼다.
원시에 가깝게 사는 종족들이 문명사회의 사람들보다 더 만족감을 느끼고 산다는 기록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막연한 불안감이나 강박관념과 같은 정신병이나 전쟁, 억압 등 모든 부조리는 문명사회에 사는 이들만의 특징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원시에서 문명사회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인류에게 이 모든 병리현상을 가져다준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에 따르면, 기원전 4000년경 공동매장이 개인매장으로 대체되기 시작하면서 기록과 명문(銘文)들에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발언 등이 언급됐다. 자아인식이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자아가 급속도로 과도하게 발달한 ’자아폭발‘이 고독과 죽음의 공포 등 정신적 고통을 가져왔고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 쾌락과 물질주의 등을 추구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5년간 고고학과 인류학에 대한 무수한 책과 논문을 읽으면서 집필했다는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를 폭넓게 되짚으며 현대사회 병리현상의 근원과 이를 극복하고 인류가 되찾아야 할 모습을 논리적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난 수천 년간 인류역사를 채웠던 광기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진화적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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