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가 겉돌고 있다. 각 정당이 던진 출사표는 비장했지만 국감 10일째를 앞두고도 긴장감이 없다. 당초 한나라당은 서민 속에 파고드는 철저한 정책 국감을, 민주당은 수권정당, 대안정당의 능력과 민생복지 일념을 보여주겠다며 의욕을 과시했다. 여야가 이처럼 국감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내달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는 데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번 국감을 점수 만회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일정의 절반을 소화한 국감 중간성적표는 한마디로 ‘기대 이하’다. 오히려 예년보다 더 ‘맹탕 국감’인 내용부재의 모습이다. 부실한 자료 준비와 재탕 삼탕 반복 질의, 불성실한 출석, 무분별한 자료 요구 등 고질적 문제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목청을 높이며 피감기관을 질타하지만 제대로 된 대안은 없다. 파행과 시간 때우기도 여전했다. 특히 반말과 막말, 막무가내 호통 질의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유난히 많았다. 정몽준 의원의 외교부 장관 상대 반말 질의는 장안의 화제가 됐다.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위기의 파고는 어느 때보다 높다. 치솟는 물가와 전월세 대란, 저축은행 파동, 청년실업 가중 등 민생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이다. 게다가 리더십은 사실상 실종 상태다. 임기 말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는 쏟아지는 측근 비리로 급속히 레임덕에 빠져들고 있다. 바깥 환경은 더 좋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에서는 정치권이 중심을 더 단단히 잡아야 한다. 국감을 통해 행정과 사법부를 긴장시키고 민생에 필요한 일들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게 압력을 가하는 게 국회의 할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 70%가 이미 지지한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 하나 슈퍼에서 판매할 수 없게 손을 놓고 있다면 꼴이 아니다. 복지부에서 어렵사리 제대로 하겠다는 것을 국회가 법안통과를 안 해줘 무산시킨다면 그런 국회가 하는 국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가.
우선 남은 기간이라도 국감을 내실 있게 마무리하기 바란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등 국가적 핵심 현안을 지체 없이 처리하는 것 역시 위기 극복의 핵심 수단이다. 한번 읽어보지도 못할 쓸데없는 자료를 잔뜩 신청, 행정부를 괴롭히는 게 국회 국감이 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