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상비약 슈퍼 판매가 또 난관에 부딪혔다. 감기약과 소화제 같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여야 국회의원 대부분이 거세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 24명 가운데 한나라당 손미숙 의원만 유일하게 찬성 의사를 비쳤을 정도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등 여야 수뇌부도 반대론에 가세, 상황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법 개정을 촉구했지만 이런 상태라면 국회 통과는커녕 상임위 상정도 힘들어 보인다.
정치권이 약사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유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 약국 밖에서 약을 팔면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건강을 걱정해서라지만 실제 속내는 따로 있다. 내년 총선을 의식해 6만여 약사회 눈치를 보는 것이다. ‘슈퍼 약 판매’는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하고, 수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마련된 제도다. 국민의 편에서 앞장서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되레 약사들 눈치나 보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한심하고 실망스럽다. 이들의 눈에는 약사들만 보이고 국민들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국민도 법 개정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명단을 공개, 표로 응징할 수밖에 없다.
약사법 개정의 취지는 국민의 편익 증진에 있다. 한밤중에 아이가 열이 날 때 해열제 한 알 먹이기 위해 비싼 진료비를 부담하며 병원 응급실을 찾는 불편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권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해당 상임위 의원은 물론 여야 지도부까지 나서 반대한다면 약사회의 공공연한 로비와 협박에 굴복한 것이 분명하다.
언제까지 소수 이익단체의 힘이 말 없는 다수의 국민 편익을 무시할 수는 없다. 더욱이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슈퍼 약 판매 제도를 시행한 지 이미 오래다. 우리도 못할 이유는 없다. 약사회 입장을 대변한 듯한 복지위 의원들의 반대 논리가 옹색하고 설득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슈퍼 약’은 효능과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됐고, 취급자에 대한 교육과 판매 대상 연령 한정, 일시 구매 수량 제한 등 다양한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다. 정작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안전장치에 문제는 없는지, 더 보완할 것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다. 국회는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 약사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