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수씨 기부의 순수성이
모금전문가 정치목적에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기부는 징검다리 아니다
올가을 세상을 동시에 떠들썩하게 한 짜장면 배달부 김우수 씨와 아름다운재단 설립자 박원순 변호사는 어려운 남을 돕는 기부행위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두 사람 차이가 바다만큼 넓다. 박씨는 살아서 서울시장 후보로 뜨며 알려졌고, 김씨는 교통사고로 죽어서야 알려졌다. 박씨는 월세 250만원짜리 61평 대형 아파트에 살고, 김씨는 1평 쪽방에서 살았다. 김씨는 총수입인 월급 70만원을 쪼개 기부했고, 박씨는 부자 상대로 통 크게 남의 돈 받아 처리했다. 쇼맨십, 화려한 언변, 학력, 산 자와 죽은 자, 앞으로 대권까지 꿈꿀 수 있는 진로의 차이 등 까마득하다.
굳이 공통점을 더 찾아낸다면 아마 세금 안 내거나 덜 낸 것을 들 수 있겠다. 김씨는 저소득층으로 아예 면세 대상일 터이고, 박씨는 연봉 7, 8천만원짜리 대기업 공기업 사외이사 하면서 원천징수당한 세금 정도 내지 않았을 듯싶다. 모금전문가에게 세금고지서 들이밀 간 큰 세무공무원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문득 만물의 이중성(二重性) 문제가 어깨를 짓누른다. 극히 예외를 제외하고 이중성은 모든 존재에 존재한다. 생물과 무생물, 인문학과 비인문학을 망라한다. 특히 이중인격 때문에 사람들이 예부터 울고 웃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자 불현듯 ‘이중성’ 제목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모든 인생은/지킬 박사와 하이드/야누스의 두 얼굴/박씨 등 특정인만 따질 텐가/…/아침에 피었다가/저녁에 시드는/나팔꽃 순정처럼/二重性은 여기 저기/잘도 꽃을 피우네/…/47억 살 나이 먹은/지구의 주인이/왜 꼭 사람인가/카프카의 신화같이/변신 곡예 잘해서지/
이중성의 고민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날개가 평형을 유지할 때 민주주의는 만개한다. 그러나 보수 우파는 자유 쪽에 더 비중을 두자 하고, 좌파 진보는 평등 쪽에 더 무게를 두려 한다. 이 까닭에 자유민주주의를 고수하려는 우파와 체제 변화를 원하는 평등 쪽 사회민주주의 지지의 좌파가 갈등을 빚어낸다. 지금이 바야흐로 그런 투쟁 정점에 있다. 아니 정점에서 다분히 좌파 쪽으로 기운 형국이다. 복지 논쟁 때문이다.
더 큰 원인은 보수 정권의 지난 3년여 집권 실적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청년백수 양산과 빈부격차 확대가 안철수 박원순 돌풍을 몰고와 기존의 정당정치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로 정당에 몸담지 않은 박 변호사가 당선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기실 젊은 투표자들은 이들의 정체를 드러난 외양 이상 아는 게 없다. 안씨가 IT업계에 기여한 것이나 박씨가 희망제작소 등을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과정에서 어떤 겉과 속 다른 몰염치 행위가 있었는지 거의 모른다. 그저 좋은 일 하고 근사한 말 던지는 신선한 느낌만을 받고 열광하고 투표한다. 솔직히 착시 현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를 뽑기 위해 장충체육관에 몰려든 20대가 바로 그들이다. 이것도 ‘선거’ 제목의 시 한수로 풀어봤다.
/‘뽑는 사람’들 앞에서/온갖 광대짓 하다가/어느새 ‘뽑힌 사람’ 되니/세상이 내 손 안에 있네/…/이리 좋은 줄 알았으면/진작 나섰을 것을/교수, 판검사, 언론인, 관료/시민운동가, 사회개혁가 등/허울 좋은 이름들 에둘러/한참 늦게 왔지만 좋구나/…/내 속이 흰지 검은지/알 사람 몇이나 될까/단상에서 사자후 토할 때/나는 그만 개그맨 되었네/
박씨는 모금전문가로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계속 도왔으면 좋았다. 어느 날 갑자기 정치에 눈을 돌린 결과 이중성의 의심을 받는다. 아름다운재단이, 아니 부자 돈 받아 기부한 행위가 정치 징검다리, 추악한 재단으로 변질될까 안쓰럽다. 적어도 기부천사 김우수 씨의 앞 뒤,겉과 속은 한결같았다. 그가 박씨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