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자문위원 자격으로 최근 미국 워싱턴 총회 참석 후 귀국한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의 ‘내년 세계경제 2% 성장’ 진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불황과 금융위기로 성장률이 높은 중국 등을 뺀 유럽 미국 등은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경제가 당장 금년 4분기부터 후퇴,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진다는 전망은 더 암울하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통제불능 상태’가 현실화한 느낌이다.
재정 긴축에 실패한 그리스는 국가 부도를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무디스가 국가 및 은행 신용등급을 각각 3등급, 2등급씩 한꺼번에 내린 이탈리아는 물론 스페인 프랑스도 안전하지 않다. 이런 경제 위기는 금융 부문에서 실물 부문으로,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확산되고 있고 전 세계 제조업지수마저 일제히 하락, 장기화 조짐이 엿보인다. 저(低)성장ㆍ고(高)물가에 직면한 한국이 혼자 아무리 발버둥쳐도 주가 하락, 환율 상승 대세를 거스르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서비스 생산 및 고용 지표의 증가세 전환, 소비자기대지수 호전 등이 그 예다. 수출 부진을 내수와 서비스가 받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달 인위적 시장개입을 감안한 3033억달러 보유 외환은 유동성 불안을 덜어준다. 유럽계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도 2500억달러 이상의 외환 보유가 가능하고 최근 단기외채 축소, 외국인의 채권투자 증가와 다변화 추세 등에 비추어 3년 전 위기 때보다 결코 나쁘지 않다.
대책은 시장 참여자들이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G20 통화스와프 체결을 비롯한 수출 기업의 보유 외환 방출, 외자기업의 ‘먹튀’를 막을 토빈세 도입, 예금은행의 외환보유액 사용 억제 등 실질적 외환정책이 불가피하다. 이번 위기가 실물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펀더멘털 강화는 당연하다. 가계와 기업의 거품 제거,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의 독과점 척결, 복지 수요에 부응한 안정적 재정관리와 일자리 창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 개방에 부응한 수출 증대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내년 양대 선거를 겨냥한 무리한 내수 부양은 독약이다. 모든 경제주체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