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국민시인 트란스트뢰메르 올 노벨문학상 수상…높은 곳서 바라본 세상 본질 꿰뚫어
‘절망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고통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독수리가 제 비행을 멈춘다//…만물이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한다/우리는 수백씩 무리 지어 햇빛 속으로 나간다//우리들 각자는 만인을 위한 방으로 통하는/반쯤 열린 문/( ‘미완의 천국’)허공에 미완의 천국을 세운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80)에게 올해 노벨문학상이 돌아갔다. 6일 스웨덴 한림원은 그가 “다소 흐리면서도 압축된 심상을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는 1996년 폴란드의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이후 15년 만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오며 스칸디나비아권에선 가장 명망 있는 작가로 통하는 그의 시가 세계 독자들과 만나게 된 건 미국 작가 로버트 블라이를 통해서였다. ‘여정의 비밀’‘미완의 천국’‘창과 돌을 보라’‘발틱스’등이 영어로 번역되며 현재 60개국 이상의 언어로 나와 세계 시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국내엔 2004년 ‘오늘의 세계 시인’ 총서를 통해 ‘기억이 나를 본다’란 작품선집으로 선보였다. 당시 이 기획의 책임편집을 맡은 이가 트란스트뢰메르와 함께 줄곧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른 고은 시인이다.
트란스트뢰메르는 1931년 스톡홀름 태생으로 23살 때 ‘17편의 시’를 펴내며 화려하게 등단한다. 자연을 노래한 초기 시를 지나 중기 이후 세상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듯한 신비주의적, 초현실적 관점이 두드러진다. 그의 시 세계에서 나무와 호수, 새, 인간, 만물 사이엔 경계가 없고 투명하며 자유자재하다. 그가 꿈꾸는 천국은 그렇게 열려 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되 세밀하고 본질을 꿰뚫는 예리함에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말똥가리 시인’이라 부른다.
심리학자로서도 오랫동안 활동한 트란스트뢰메르는 한때 고고학과 자연과학에 매료돼 푹 빠져 지내기도 했고, 피아노 연주와 그림은 수준급으로 알려졌다. 리스트가 바그너를 추모하며 작곡한 ‘슬픈 곤돌라’를 시 표제로 삼는 등 음악용어나 작품을 딴 시들이 꽤 있다. 1990년 뇌졸중으로 언어장애 및 반신마비가 된 뒤에는 한 손으로 피아노를 친 ‘다섯 손가락’의 시인이다. 한림원의 수상자 발표가 있던 순간에도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다가 “정말 좋군”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상소감은 없었다. 심상이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는 자리에서 그의 음악은 또 다른 언어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