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여의 극한적 갈등을 겪은 한진중공업 노사분규가 가까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정리해고자 1년 내 재고용 및 2000만원 한도 내 생계비 지급’ 권고안을 전격 수용한 것이다. 분규의 경위와 결말이 어떠했든 현안 해소의 빌미를 찾은 건 다행이다. 전 지구적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조선업계의 분규 장기화는 나라와 사회 안정에 적지 않은 해악을 끼치는 탓이다. 노사 양측은 성실한 교섭으로 원만한 합의안을 도출하기 바란다.
이번 국회 권고안은 노사가 어느 정도 사전 조율을 거쳤지만 몇 가지 취약점을 안고 있다. 국회 환노위가 여야 만장일치로 권고안을 채택했어도 재취업자의 지위나 재취업 기한, 생계비 지원 명목 등 주요 쟁점들은 여전히 모호한 상태다. 재취업 근로자 지위의 경우 회사는 일단 해고 효력을 전제로 해서 재고용한다는 입장이나, 노조 측은 정리해고를 원천 부정한 복직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실리와 명분이 한 매듭에 얽힌 미묘한 대립이다. 재고용 시한에서도 양측은 적어도 8개월 이상 시차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번 분규의 해결 방식과 과정이 우리 사회에 매우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노사 당사자들도, 공적 조정기구인 노사정위원회도 모두 배제한 채 정치권이 직접 개입하고 중재한 것이다. 이는 노사 자율이라는 큰 원칙을 거스르고 민간기업의 노사관계를 제3자 개입이나 노사 포퓰리즘으로 몰아가 노사관계사에 중요한 왜곡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노사관계의 전반적 후퇴를 의미할 수 있다.
더구나 법적으로 허용된 정리해고를 부당해고로 정치화하려는 시도가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동안 희망버스로 상징되는 3자 개입의 만성화로 양 당사자는 물론 사회불안과 비용을 높여왔던 점에 비추어 노사분규 정치개입의 부작용은 두고두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정치권은 이 점을 깊이 음미하고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탈피해야 한다.
정치권은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고공 농성 중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을 당장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해야 한다. 남의 사업장에 들어와 장기간 과격 투쟁을 벌이는 불법을 정치권이 용인하는 모델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