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들떠 있던 공기도 차분히 가라앉는 계절이다. 가을을 알리는 찬공기가 몸속을 파고들고, 어렴풋이 옛사랑이 떠오르는 묘한 낭만감이 충만한 계절. 유독 가을엔 연극이 잘 어울린다. 모처럼 한껏 차분해져도, 살짝 진지해져도 좋을 귀한 타이밍. 가을의 결실을 기다리며, 실(實)하게 익은 연극 세 편을 골라봤다.
▶연극 ‘레드’…신선한 예술적 자극을 맛보려면(매력 포인트: 토니상 6관왕, 2인극, 마크 로스코, 회화)
“잭슨 폴락은 디오니소스, 선생님은 아폴로적이죠.”(조수 켄)
“자네는 세상이 그렇게 간단한가. 핵심은 언제나 비극이야.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 심리를 모르는군. 폴락은 감성, 로스코는 지성이라고? 쯧쯧….”(화가 마크 로스코)
연극 ‘레드’는 국내 연극계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작품이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치열했던 예술적 고뇌에 천착한 작품이다. 예술가를 소재로 한 작품 특유의 지적인 매력이 넘친다. 작품은 마크 로스코(강신일)와 그의 조수 켄(강필성)의 선문답 같은 대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예술과 우리의 삶을 향한 물음을 던진다.
극중 켄은 “레드가 (단순히) 물감 아니냐”고 묻지만, 로스코는 “레드가 단순히 빨간색 물감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라고 일갈한다. ‘레드’를 찾으려는 예술가 로스코의 고뇌를 하나 둘 관객들에게 펼쳐보인다.
오경택 연출은 ‘레드’의 대본을 읽고, 가장 먼저 배우 강신일을 떠올렸다고 한다.
▶연극 ‘레드’…신선한 예술적 자극을 맛보려면(매력 포인트: 토니상 6관왕, 2인극, 마크 로스코, 회화)
“잭슨 폴락은 디오니소스, 선생님은 아폴로적이죠.”(조수 켄)
“자네는 세상이 그렇게 간단한가. 핵심은 언제나 비극이야.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 심리를 모르는군. 폴락은 감성, 로스코는 지성이라고? 쯧쯧….”(화가 마크 로스코)
연극 ‘레드’는 국내 연극계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작품이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치열했던 예술적 고뇌에 천착한 작품이다. 예술가를 소재로 한 작품 특유의 지적인 매력이 넘친다. 작품은 마크 로스코(강신일)와 그의 조수 켄(강필성)의 선문답 같은 대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예술과 우리의 삶을 향한 물음을 던진다.
극중 켄은 “레드가 (단순히) 물감 아니냐”고 묻지만, 로스코는 “레드가 단순히 빨간색 물감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라고 일갈한다. ‘레드’를 찾으려는 예술가 로스코의 고뇌를 하나 둘 관객들에게 펼쳐보인다.
오경택 연출은 ‘레드’의 대본을 읽고, 가장 먼저 배우 강신일을 떠올렸다고 한다.
7일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강신일 씨는 “로스코는 색을 통해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찾고 싶어 했던 작가”라며 “말년으로 갈수록 ‘레드’를 찾기 어려워지고, 자꾸 ‘블랙’이 끼어든다. 어느 순간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까 두려워하는 인물”이라고 배역을 설명했다.
작품은 시각적인 즐거움도 겸비했다. 연극이라는 장르가 지니는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 2인극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연극 장르의 취약점인 시각적인 매력을 ‘그림’이라는 소재로 보완했다.
두 사람은 극중 1.4 x 2.4m 크기의 캔버스를 직접 짜고, 실제로 페인팅을 한다. 붉은색 물감으로 1분30초 만에 휘몰아치듯 쓱쓱 캔버스를 메운다. 대사 하나 없이 진행되는 장면이지만, 눈앞에서 실시간 벌어지는 강렬한 이미지가 압도적이다. 2인극의 단조로운 구조를 뛰어넘는 극적 설정이다.
두 배우는 실존했던 화가의 삶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미술관 답사를 떠났다. 또 전문가인 박명선 경희대 교수를 초빙해 로스코의 작품세계와 캐릭터를 공부했다. 실제 페인팅 신을 위해서는 신흥우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캔버스 짜는 법부터 붓칠까지 화가의 기본을 몸에 익혔다. 켄 역의 강필성 씨는 “짧은 시간에 전문가의 자연스러움이 붓질에 묻어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반대로 강신일 씨는 “몸을 써서 붓질하는 건 오히려 쉬웠고, 오랜만에 미술 이론을 공부하느라 머리가 아팠다”며 웃었다.
이 작품은 2010년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검증된 수작이다. 예술가의 실재했던 깊은 고민과 회의를 2인극으로 풀어내면서, 지적인 연극의 진수를 보여준다. 관객들은 2009년 영국에서 초연된 뒤, 미국 브로드웨이로 직행한 이 작품이 왜 토니상을 휩쓸었는지,그 화려한 성과에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작품은 예술가의 고뇌를 뛰어넘어, 젊은 세대인 켄과 기성 세대인 로스코의 대립 구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신구 세대의 교감을 이야기한다. 강신일 씨는 “나 스스로 열린 기성세대라고 생각하지만, 기성세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며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한 궤변을 늘어놓는 로스코의 모습을 연기하면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배우로서 닮은 점이 많아 반성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연극 ‘벌’…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판타지의 결합(배삼식 작가+김동현 연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막간극)
연극 ‘벌’은 ‘3월의 눈’ ‘벽속의 요정’ 등을 집필한 연극계의 대표 작가 배삼식의 신작이다. 색다른 소재 선택과 남다른 성찰로, 한낱 유희가 아닌 관객들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작품을 써온 작가다. 이번 작품의 모티브는 ‘벌’이다. 지난해 구제역으로 가축 살처분이 한창일 때, 한편에선 토종벌 95%가 폐사했던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꿀벌이 소나 돼지와 마찬가지로 구제역에 걸려 멸종 위기를 맞는 걸 목격한 작가는 전염병이 돌아 벌이 사라진 마을에서 3일간 벌어지는 이야기를 빚어냈다.
극은 벌이 사라져버린 마을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토대로, 저마다 병을 앓고 있던 마을 주민들을 하나씩 조명한다. 통풍, 말기암, 만성신부전증 등 신체적 질병부터 향수병, 도박중독 등 심리적 질병까지 인간이 지닌 다양한 형태의 병을 들여다본다.
작가는 연극의 단조로운 구성에 변화를 주는 막간극 설정을 도입했다. 현실에서 환상으로 넘어온 막간극에서 배우들은 인간이 아닌 벌로 분해, 벌의 움직임을 선보인다.
벌의 움직임을 연구하기 위해, 제작진은 여러 차례 양봉장 답사를 떠났다. 배우들은 벌에 대한 강의를 듣고 직접 양봉 체험을 통해 벌의 삶을 관찰했다.
배삼식 작가는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암에 걸린 여자의 몸 위로, 역시 병을 앓고 있는 벌들이 내려앉았다가 날아가는 이미지가 떠올라 작품을 집필했다”며 “우리가 병든다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벌도 사람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연극 ‘해무’…송새벽과 날선 리얼리즘(송새벽 연극 복귀작, 리얼리즘 연극, 로맨스)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해무’는 제게 의미가 남다른 작품입니다. 초연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한다면 질투가 날 것 같았어요.”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해 이제 충무로의 스타가 된 배우 송새벽이 대학로 무대에 선다. 그가 2007년부터 세 번이나 공연한 연극 ‘해무’를 통해서다.
6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송새벽은 “초연 시 여수 앞바다에 엠티 가서 답사를 했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작품”이라고 했다.
연극 ‘해무’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밀항을 꾀한 조선족과 삼류인생을 벗어나고픈 선원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겪게 되는 희망과 좌절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리얼리즘 연극이다. 2001년 여수에서 밀입국을 시도하던 선박 태창호가 어창에 갇혀 그 안에 타고 있던 중국인, 조선족이 질식사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극중 송새벽이 맡은 역할은 순박한 막둥이 어부. 송새벽은 “순박한 시골 어부의 모습부터,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절규하는 모습까지 다양한 연기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또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소감으로 “변한 건 하나도 없다. 나는 연극쟁이라 오히려 영화계에서 초반 시스템 적응을 못해서 힘들었지, 연극은 쭉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부담없다”며 “첫 연습 때, 예전에 함께했던 사람들과 다시 연극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해무’는 기존 100석 안팎의 연우극장에서 벗어나 500석 규모의 대학로예술극장으로 옮겼다. 안경모 연출가는 “소극장 무대에선 관객들이 같이 난파선에 승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대극장에선 망망대해에 갇힌 사람들의 몸부림을 그리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극중 송새벽이 맡은 역할은 순박한 막둥이 어부. 송새벽은 “순박한 시골 어부의 모습부터,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절규하는 모습까지 다양한 연기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또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소감으로 “변한 건 하나도 없다. 나는 연극쟁이라 오히려 영화계에서 초반 시스템 적응을 못해서 힘들었지, 연극은 쭉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부담없다”며 “첫 연습 때, 예전에 함께했던 사람들과 다시 연극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해무’는 기존 100석 안팎의 연우극장에서 벗어나 500석 규모의 대학로예술극장으로 옮겼다. 안경모 연출가는 “소극장 무대에선 관객들이 같이 난파선에 승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대극장에선 망망대해에 갇힌 사람들의 몸부림을 그리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