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5년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 3명이 여중생을 성폭행했다. 당시 분노한 오키나와 주민들이 기지 철거를 요구하고 일본 각지에서도 반미 집회가 이어져 결국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중대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를 기소 전에 일본 경찰에 넘긴다는 내용의 미·일 합의가 도출됐다.
#2. 2011년 동두천과 서울에서 10대 여학생이 잇달아 미군에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피의자 신병 확보도 못했다. 지역 시민단체 및 여성단체의 소규모 규탄집회 말고는 정부도, 국민들도 잠잠하다.
여성, 아이 등 약자를 보호하는 국가의 의무와 관련된 중대 사안인데, 사회적 반향과 사건대응에서 우리와 오키나와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워낙 자주 미군 성범죄에 노출되다 보니 무감각해진 탓일까.
기자에게 이번 사건은 재차 1997년 4월 ‘이태원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유력 용의자였던 주한미군의 아들인 아서 패터슨은 증거인멸 혐의로만 실형을 살다 특별사면 직후 미국으로 도피했고, 14년이 지난 지난 5월에야 한국 정부로부터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아 한국 송환에 관한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 측은 한국에서 죄를 저질렀더라도 자국민을 한국 법정에 보내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판단하고 있어 송환 여부는 불투명하다. 사건발생 10여년이 지나 공판과정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군의 흉악범죄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나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 모든 불합리의 근원에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자리하고 있다. 형사재판권을 규정한 SOFA 22조 5항은 살인 등 12개 주요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를 경찰 초동수사단계가 아닌 검찰 기소 이후에야 미군으로부터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고, 살인과 강간 등 흉악범도 현장체포 때만 구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사 초기의 증거나 진술 확보가 어려워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을뿐더러 피의자가 자칫 미국으로 도주해도 막을 길이 없다. 보편적인 형사법 구조와 전혀 맞지 않고, 미군 피의자에게 지나친 특혜다. 이 때문에 한국이 미군 범죄자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한 경우는 전체 주한미군 범죄의 5% 수준에 불과하다.
미군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SOFA 규정은 그간 두 차례 개정에서도 시정되지 않아 미군들에게 ‘붙잡히지만 않으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미군의 범죄를 막으려면 사건발생 즉시 한국 사법기관에서 신병인도 및 구속수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한미군 흉악범죄자를 미군 측이 오히려 비호한다는 한국민들의 인식은 한·미 군사동맹의 존재이유를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일본은 오키나와 사건을 계기로 실효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마침 정부가 주한미군 성범죄 관계부처회의를 갖고 미군 범죄에 대한 초동수사 강화 등 SOFA 개선사항을 다음 달 열리는 한미SOFA합동위원회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SOFA 규정의 실질적 개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 국민들의 SOFA 개정 열망과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제대로 전달돼 이번에야말로 SOFA 개정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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