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군대는 누가 다스리는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모후의 질문에 원로들이 답했다. “그들은 노예로 불리지 않고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사옵니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페르시아인들’의 한 장면이다.
모두가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민주주의야말로 아테네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아테네 민주주의의 배경에는 막강한 해군력이 있었다.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다른세상)의 저자 존 R. 헤일은 “자유의 보루이자 민주주의의 동력”인 해군이 없었다면 아테네의 모든 영광도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을 빼놓고 아테네 민주주의를 논할 순 없다. “아테네 민회가 해전을 앞두고 뽑은 노잡이들은 자유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가 시민이었다. 그래서 그들도 해군에 자부심을 갖고, 해군에서 나오는 고정 급여와 정치적 평등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아테네 전함인 삼단노선은 철저히 힘과 땀을 동력으로 삼았고 해군의 함성이 높을수록 시민들의 정치적 위상은 높아지고 민주주의도 탄탄해졌다.
해군이 아테네에 미친 영향은 스파르타와 비교할 때 여실한 단면이 드러난다. 제해권을 장악한 아테네가 무역과 상업을 촉진하는 등 개방적ㆍ관용적 정책을 펼친 반면 중장보병 위주의 스파르타 문화는 폐쇄적ㆍ배타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두 도시의 운명을 가른 바다와 해군이었다.
그리고 아테네의 황금기는 해군과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누릴 수 있었다. 이후 아테네 민주정이 펠레폰네소스 전쟁으로 내리막길을 걷다 기원전 322년 마케도니아 함대에 패해 스러지기까지 저자는 웅장한 전쟁사를 흡입력 강한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잡이의 관점으로 본 민주주의의 역사적 해석이 흥미롭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