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15일 서울에서도 열렸다. 민주노총ㆍ참여연대ㆍ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좌파 시민단체가 결성한 ‘99% 행동준비위원회’는 서울광장에서, 금융소비자협회ㆍ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은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서 각각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다’ ‘서울을 점거하라, 국제 공동행동의 날’ 등 구호를 외치며 금융자본들의 탐욕을 규탄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지적대로 국내 금융회사들은 탐욕과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 수십조원 공적자금을 수혈받고 지난 상반기에만 10조원 이익을 챙긴 은행들은 여전히 억대 연봉과 호화 배당잔치를 벌일 태세다. 가맹점 수수료로만 이미 4조원 이상을 거둬들인 신용카드사, 주가 폭락에 아랑곳하지 않고 순익의 30%를 배당하는 증권사도 한통속이다. 담합으로 비싼 보험료를 챙기다 4000억원의 공정위 과징금을 부과받은 생명보험사도 예외가 아니다. 불황으로 허리가 휘는 서민 고통을 외면한 지나친 금융권 탐욕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금융자본 규탄이 정치ㆍ이념 집회로 변질되면 더 이상 ‘분노의 시위’가 아니다. 이날 서울 시위는 대부분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로 동시 열린 전 세계 시위와 달리 좌파 시민단체가 주도했다. 참여인원도 수백명에 그쳤고, 시위 양태도 금융 탐욕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질타가 아닌 이념 집회로 돌변했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 키코(KIKO)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이 가세한 데다 요구사항도 반값등록금, 한ㆍ미 FTA 및 4대강 사업 반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등으로 얼룩진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와 연계한 오는 22일 ‘점령시위’도 비슷할 전망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금융 탐욕을 규탄하려면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이를 핑계로 이념적 집단 떼쓰기에 나선다면 국민 지지를 받기 어렵다. 대다수 국민들이 ‘본노의 시위’에 공감하면서도 왜 이날 시위에 실제로 동참하지 않았는지 좌파 시민단체는 반성해야 한다. 주한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의 친북ㆍ종북 이념시위를 대다수 국민들이 거부하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정부는 반(反)월가 시위가 제2의 광우병 촛불시위로 확산되지 않도록 초동단계에서 엄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