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19일 청와대 정상회담은 한ㆍ일 양국이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임을 재확인했다. 양국 간 통화 스와프 확대 등 경제협력 진전에도 불구하고 최대 현안인 과거사 정리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일단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종래 130억달러였던 통화 스와프 규모를 700억달러로 증액 합의한 것은 긍정적이다. 한국은 ‘실탄 확보’, 일본은 ‘엔고 완화’라는 윈윈 게임을 한 셈이다. 또한 2004년 이후 중단된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상 재개는 연간 300억달러가 넘는 대일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이 일본군 위안부 청구권 문제, 독도 및 일본 교과서 왜곡 등 과거사 청산을 외면한 건 유감이다. 이 대통령은 “양국 간에 걸림돌이 되는 현안이 있다. 노다 총리가 성의를 갖고 적극 임해주기를 기대한다”는 수사적 언급에 그쳤고, 노다 총리는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정상들이 대국적 견지에서 진전시킨다면 어떤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고 비켜갔다. 하루빨리 정리해야 할 과거사 문제를 단지 껄끄럽다는 이유로 손도 대지 않은 것은 양국 정상들의 책임 회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노다 총리는 일본이 침략전쟁 과거를 털어내지 않으면 양국 간 미래지향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일본은 금년만 해도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을 실었고, 인천-독도 시험비행을 이유로 외무성 공무원들의 대한항공 이용 자제를 지시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에겐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99엔을 지급하는 뻔뻔함을 드러냈다. 일본이 계속 이런 자폐적 국가주의를 고집한다면 건설적 파트너십이나 한ㆍ일 신시대 비전은 없다고 봐야 한다.
양국 정부는 의례적 셔틀 외교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만날 때마다 최소한 해결의 실마리에 의견 접근이 이뤄져야 경제 분야는 물론 안보 협력도 가능하다. 차기 정상회담에선 ‘미꾸라지’ 역할을 자임하는 노다 총리의 보다 통 큰 결단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