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북한은 반제국 반봉건 노선의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통일전선을 형성한 ‘인민민주주의’ 성격이 강했다. 조만식을 필두로 한 조선민주당과 조선공산당의 우당인 신민당, 청우당 등은 이러한 정치적 다양성을 뒷받침했다.
또 하나 인민민주주의의 특징은 혼합경제였다. 1946년에 발표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의 ‘20개조 정강’에서 드러나듯 북한은 토지개혁과 국유화를 추진하면서도 소유를 인정한 소농경리 등 다양성한 경제구조를 인정하고 상업을 장려하는 혼합경제 색채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다양성과 역동성은 채 15년을 지속하지 못했다. 신탁문제로 조만식 계열이 이탈하며 정치지형은 협소해졌고 한국전쟁 발발로 북한은 경직화로 치닫게 된다. 김일성을 축출하려 한 1956년 8월 전원회의 사건을 정점으로 비판세력은 원심력에 튕겨져 나갔고 김일성의 구심력은 더욱 강해졌다. 이에 북한 체제는 주체사상과 개인숭배로 얼룩진 김일성ㆍ김정일의 유일체제로 굳어지고 만 것이다.
이에 저자는 마비 상태에 이른 북한이 퇴화된 인민민주주의의 경험을 되살려야 한다고 진단한다. 오늘날 중국과 베트남이 변화를 모색하듯 다양성과 창의력을 불어넣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단 것이다.
이밖에도 ‘김일성 가짜론’이나 김일성의 ‘독자적 항일무장투쟁설’ 모두를 조작된 신화로 반박하는 등 실증에 입각한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좌나 우에 치우친 외눈박이의 시각을 벗어나 북한을 바라볼 때 평화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단 점에서 값지고 소중하다.
<김기훈 기자@fumbling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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