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사망 보상금 5000원’ 파문을 둘러싼 비난 여론이 뜨겁다. 보상금을 신청했던 유족은 말할 것도 없이 국민 모두가 참담한 심경이다. 국민 몸값이 5000원이라니…. 뒤늦게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고, 국가보훈처 관계자가 당사자를 찾아 사과하는 등 호들갑을 떨지만 마음의 상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깊어졌다.
2년 전,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 근로자들의 후생연금 탈퇴 수당을 99엔으로 결정,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국민을 상대로 꼭 같은 짓을 저질렀다.
‘5000원 보상금’ 사건의 핵심 키워드는 ‘국가와 책임’일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역사적ㆍ학문적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한마디로 국가는 국민을 지켜주고, 국민은 그 국가를 지켜야 하는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경우는 어떤가. 국민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가는 그 국민을 지켜주지 않았다. 국민은 주어진 의무를 다했지만 국가는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더욱이 국가는 국민의 희생을 국수 한 그릇 값 정도로 가벼이 여겼다.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당신을 반드시 집으로 다시 데려온다.’ 미국의 전쟁포로ㆍ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PAC)의 철학이자 행동지침이다. 설령 한 조각 백골로 전장에 홀로 남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잊지 않겠다는 국가의 책임과 각오를 잘 말해주는 문구다. 실제 JPAC 발굴단은 1973년 창설 이후 미군 유해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갔고, 국가는 최고의 예우를 갖춰 말없이 돌아온 이들을 맞았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5년 동안 억류된 한 병사를 구하기 위해 포로 1027명을 풀어준 것도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이 남은 수감자 구출을 위해 또 다른 병사를 납치할 것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높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단 한 명의 병사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국가의 책임에 더 충실했던 것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려면 공무원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번 파동은 고질적인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이 낳은 결과다.
“귀하에게 군인사망보상금 5000원을 지급하오니 본인 명의 계좌번호를 알려주기 바란다”는 통지문을 보낸 사람은 분명 국가보훈처 공무원이다. “당시 지급금액 5만환을 지금 금액으로 환산하여 지급한다”는 통지문을 작성하면서 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들에게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는 말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보훈처 직원들에게 50년 전 수준의 급여를 주면 어떨까. 쏟아지는 의문은 끝이 없다.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되는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군 유일한 국가라는 칭송도 자자하다. 이 모두가 나라를 목숨으로 사수한 6ㆍ25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들에 대한 예우를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책임질 때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국가관이 형성된다. 더욱이 우리는 징병제 국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