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내렸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이날 아침 수많은 시민들을 실은 버스가 달리고 있던 다리의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 상판 50여미터가 내려앉았다.
혹자는 성수대교의 붕괴 모습을 보고 컴퓨터그래픽이나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렸지만 이것은 분명한 참사였다. 대한민국의 17년 전 아침에 일어난 대형사고였으며 테러도 폭격도 아니었기에 세계가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강남개발사의 이른 성과물들이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랐고, 마침내 민주화마저 달성되는 듯 싶었던 ‘반짝 환상’들이 넘나들던 때였다. 거짓말처럼 다리가 무너지고 그 사고로 인해 학생과 시민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찰나로 인해 저물어간 사람들도 있었고, 삶의 끝자락을 놓지 않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위험천만한 충격적인 순간을 실물로 바라다보며 운명처럼 살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이날의 구멍뚫린 대참사의 순간, 그곳의 개인들은 서로 다른 삶의 기억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그리고 영화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을 통해 또다른 시각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기반성과 다짐과 비판을 안겼다. 비중은 각기 다르다. 무대나 스크린에서는 굴곡진 현대사의 단면(연극 ‘마르고 닳도록’)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오롯이 그것에 집중했거나 성수대교를 빗댄 사고(영화 ‘모비딕’)를 등장시켜 순간 집중력을 높이기도 했다. 소설에서는 살아남은 자들에 집중했다. 예기치 않은 사건이 사람들에 미치는 영향, 그 이후 그들의 삶을 써내려가며 또다른 현재 혹은 미래를 담았다. 각기 달랐지만 1994년 그날의 비극은 끝없는 문제의식 안에서 우리를 돌아보게 했다.
▶ “그 날을 잊지 말아요”, ‘기념촬영’의 13분= ‘말아톤’ ‘수퍼맨이 된 사나이’ 등의 휴먼드라마를 통해 따스한 울림을 주는 정윤철 감독의 첫 걸음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소재로 한 이 한 편의 영화였다. 지난 1997년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단편영화 ’기념촬영‘이 그것이다.
‘말아톤’ 이전의 정 감독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을 주로 찍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념촬영‘이었다.
영화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단짝친구를 잃은 여학생의 눈으로 13분을 끌어간다. 무너진 다리 위에서 8명의 친구를 잃은 어린 학생들, 그리고 3후 그 다리가 다시 이어져 재개통되자 살아남은 아이들은 먼저 간 친구들을 떠올리며 지난 기억과 다가올 미래를 어렴풋이 그린다. 바로 여기에서 개통된 성수대교와 자신들의 모습을 기념촬영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13분짜리의 영화는 길이가 짧은 만큼 매순간을 스쳐지날 수 없지만 붕괴된 다리 위에서 죽어가는 한 소녀가 다리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은 왜 이 사고를 쉽게 잊으면 안 되는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7년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하며 정윤철 감독의 이름을 알린 이 영화는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부문 상영, 1999년 싱가폴국제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 트라우마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 ‘호랑이는 왜…’ ‘스타일’=작가들은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에 더 깊이 집중했다.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매체와는 달리 오로지 활자 안에서 모든 고통과 기억과 희망을 이야기해야했기에 잊지못할 사고는 더 진지하게 그려졌다.
먼저 윤대녕의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살아온 주인공 영빈과 그의 어린 여자친구 해연, 두 사람의 술친구인 비밀스런 재일동포 히데코가 서로 얽혀 자신들이 삶을 이야기한다.
별난 개인사들을 안고 있는 영빈과 해연의 첫 만남은 성수대교 붕괴현장에서였다. 택시 안의 낯선 동행이었던 두 사람, 영화처럼 무너져 내린 다리의 중간 부분을 미치지 못하고 살아남게 된 그들은 그 하나의 쓰린 기억과 서로 다른 억업된 시대상 안의 개인사를 보듬으며 살아간다.
그들은 하지만 떠나야했다. 어떠한 조직이나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영빈의 고독과 불안,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은 모조리 떠나고 만다는 해연과 히데코의 강박은 그들을 ‘떠나야만’ 하게 만든다. 거기에 대참사로 인한 어이없는 죽임들에 자신들도 개입돼있다는 자책이 더해졌다. 때문에 영빈이 먼저, 해연이 뒤따라 제주도로 떠나고 기적처럼 그들은 치유돼 돌아온다. 일종의 고백과 용서의 과정을 겪으며 자기 안에 내재된 호랑이를 죽인 뒤 돌아오는 것이다.
또다른 소설 백영옥의 ‘스타일’ 역시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한 여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담겼다. 한 패션매거진 회사에 근무하는 주인공 이서정, 이 거대하고 화려한 소비매체의 중심에서 서정은 하루하루 비루한 삶을 산다. ‘유사한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직장 선배한테 한 번이라도 ‘덜 깨지기’ 위해 분투하고 광고주의 비위를 맞추는 삶. 보여주는 것이 일상인 세계 안에서 쌓여가는 것은 카드빚뿐, 그 역시 44사이즈 동안미모를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서정은 그 와중에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기부를 하고 착취가 없는 윤리적인 커피 농가를 위한 모금에도 앞장선다. 여기에 서정의 트라우마가 새겨진다. ‘욕망의 집약지’라고 불렸던 강남의 아파트촌에서 성장한 서정, 그곳이 바로 성수대교 인근이었다. 열일곱이었던 서정은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그날 쌍둥이 언니 중 한 명을 잃는다. 서로를 안으며 한 영혼처럼 지내온 쌍둥이를 잃고 살아남은 다른 언니는 아프리카로 떠나 의료봉사활동을 한다. 쌍둥이 언니만큼의 아픔을 겪을 수는 없다며 자신의 아픔은 드러내면 안 된다고 믿던 서정은 현실에 남아 개통된 성수대교를 바라보며 아프리카로 떠난 언니를 떠올리며 그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현실을 산다.
소설은 이렇듯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긴 트라우마와 그것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물론 궁극적인 것은 ‘그럼에도 희망’이다.
▶ 얼룩진 현대사의 한 장면 ‘야후’=윤태호의 ‘야후‘에는 오롯이 대한민국의 1980, 90년대가 담겼다. 1998년 연재를 시작해 2003년까지 이어진 장편현대극, 이 안에는 가상의 특수부대 수도경비대에 들어간 주인공이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아현동 가스폭발사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 연이어 투입됐다가 극심한 충격을 받고 테러리스트가 된다.
모든 사회상이 주인공에게 하나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자리잡았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수대교 붕괴사고였던 것이다.
이 나라에 있어온 무수히 많은 사고와 사건들이 어느 개인의 실수나 잘못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큰 덩어리들이 녹아있었고 때문에 만화는 이것을 사회와 나라 전체로 확대해 그 문제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만화는 1999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우리 만화상상‘을 수상했고, 몇몇 나라에 번역돼 출간됐으며 또 다른 만화 ‘이끼’와 함께 윤태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