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부키. 2011)에 대한 리뷰다. 정치경제학적 관점과 서술은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부드럽고 재미있다. ‘인간의 얼굴’이란 다름 아닌 저자의 관점과 글쓰기 방식을 대표하는 말이다. 한편으로 이 책의 주제를 상징하기도 한다. 즉, 미국과 유럽의 ‘복지’ 문제를 다뤘다. 복지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가.
책은 미국의 한 변호사가 독일에서 체험한 ‘복지 현장’을 미국과 비교하는 내용이다. 어떻게 하면 미국과 독일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까. 저자는 비슷한 계층(중산층)의 두 여성을 비교한다. 시카고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는 바버라는 미국에서 상위 10퍼센트 안에 드는 중산층이다. 그녀의 현실은 다음과 같다.
‘바버라의 집은 교외에 있어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데 늘 교통 체증이 시달리지. 왜 교외에 사느냐고? 아이 교육 때문이야. 도심에 있는 학교가 엉망이라 그나마 괜찮은 학교를 찾아 멀리 나간 거지. 겨우 출근하고 나면 밤까지 정신없이 일에 매달려야 해. 다들 야근을 자청하는 분위기라서 칼퇴근을 하는 건 ‘저를 잘라 주세요’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거든. 집 사느라 빌린 대출금 갚고, 애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면 어떻게든 버텨야 해. 밤 10시, 교통 체증을 뚫고 겨우 퇴근하면 온몸이 녹초가 돼서 멍하니 TV 앞에 있다가 쓰러져 잠들지. 이번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서 일해야 할 것 같아. 여가 생활 같은 건 꿈도 못 꿔.‘
반면에 독일의 이사벨은 다르다. 그녀 역시 중간 관리자로 일하는 중산층이다.
책에 따르면 그녀는 버스, 전철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대중교통이며 자전거 도로가 워낙 잘 갖춰 있어서 굳이 승용차를 탈 이유가 없다. 회사에서는 일이 끝나면 바로 퇴근하면서 보육원에 들러 아이들을 데려온다. 보육비는 전부 국가에서 지원받는다. 집에 와서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고친 뒤에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교외에 나간다. 매년 6주의 휴가를 즐긴다. 작년에는 스리랑카에 다녀왔다. 남편과 의논해서 내년에는 아이를 하나 더 낳을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아마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바바라의 삶이 누군가의 삶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다. 어디 여자들의 문제인가. 남자 역시 전혀 다르지 않다. 마흔이 넘으면 명퇴나 퇴출의 고민을 늘 안고 사는 우리나 미국의 경우가 똑같다. 저자는 미국의 사정을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어 설명했다. 학생들과 대화 내용이다.
“여러분이 사장이고, 나는 여러분 회사에서 29년간 근무했다고 합시다. 1년 후면 퇴직입니다. 어느 날 내가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어요. 여러분은 ‘당신 넥타이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당장 해고야.’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현지 학생들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풍토가 다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불통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려다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한발 물러선다. 그러나 ‘실제로는 함께 일하던 사람을 막무가내로 자르는 일은 별로 없다’고 말하면서도 ‘미국인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직장을 평균 여섯 번 정도 옮긴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이 책은 미국과 독일이라는 두 모델을 통해 우리의 복지정책을 되돌아보게 한다. 결국 최종 목표는 사람을 위한 세상이다. 복지 역시 그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에 ‘복잡한 감정‘이 일지 않을까 싶다.
‘겉보기에는 독일보다 돈도 많이 벌고 훨씬 잘 사는 것 같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모든 것을 돈에만 쏟아붓는 그런 곳에서 어떻게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겠어? 그러니 2001년 두 달간의 베를린 생활을 마칠 때 미국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내 심정이 이해가 될 거야. 그때 분명히 깨달았어.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독일처럼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여유롭게 살게 만드는 것, 그게 진짜 ‘복지’고 살 만한 세상 아닐까?‘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