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박원순 시민운동가의 서울시장 당선으로 시민사회 세력이 권력의 감시자에서 참여자로 바뀌며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불러온 것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를 통해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이 확인되자 이들의 정치세력화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지배하기 위한 권력 쟁취다. 자신들의 이상과 이념을 펼치기 위해, 또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은 존재한다. 시민사회가 권력을 추구한다면 더 이상 시민운동이 아니다. 시민운동은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지 권력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철저한 공익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시민운동가들이 정치를 하는 것은 자유다. 다만 그럴 생각이 있다면 ‘시민’이란 간판은 내려놓는 게 옳다. 이번 선거에서 박 시장을 도운 시민사회 세력도 마찬가지다. ‘박원순 후보 지지 시민사회 모임’에 이름을 올린 200여명은 진보성향 시민단체 대표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시민정치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전부터 정치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온 일부 시민단체들이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사회의 그늘에서 나와 당당히 정치세력을 표방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박 시장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는 시민운동의 대부(代父)를 자처해 왔고, 그 후광이 당선에 결정적 기반이 됐다. 박 시장과 시민사회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지만 1000만 시민의 수장 역할을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선 시민단체의 시정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선거를 지원한 시민단체들은 어떤 형태로든 시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박 시장이 부채 의식에 사로잡혀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시민단체에 휘둘려 시정이 궤도를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좌(左) 참여연대 우(右) 아름다운재단’이란 말이 나도는 것은 유감이다.
시민단체 역시 입장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그동안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의 그늘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바로잡는 빛과 소금 역할을 일부 해온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눈길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일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정치와 경제 권력이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다행히 정파적 이해에 얽히지 않은 순수 시민단체들이 아직은 대다수다. 권력과 정치에 마음을 뺏긴 시민단체는 그만 물러나야 한다. 색깔을 분명히 해야지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