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시설개선에서 탈피
과속개발 속도조절 등 필요
미래지향적 도시경쟁력 확보
시장변수 맞춘 전략 추진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과 함께 서울시정을 이끌 진보적 전문가집단이 꾸려지면서 서울의 도시 정책 변화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시민의 실생활은 물론, 삶의 터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도시 정책은 중앙정부와의 마찰은 물론, 주민 간에도 이해가 대립되면서 그동안 시정 불화의 근간이 돼온 게 사실이다. 잔여 임기 2년8개월 동안에 이에 대한 기저를 바꿀 수 없으며, 지방정부로서의 역할 역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역동성과 집행 성격을 감안하면 부분 변화는 가능할 것이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비롯해 뉴타운 등 그동안 추진해온 대형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 시민들의 경제활동 및 자산과 밀접한 이들 사업의 정책 기조가 바뀐다면 서울 얼굴과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얼굴이자 한민족의 혼과 문화, 삶이 담긴 서울은 그동안 개발 바람을 타고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해외여행에서 돌아올 때 서울에 대해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것은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현대도시의 상징인 IT화된 마천루 건물과 첨단 시설이 대거 들어서면서 도시가 깨끗해졌고, 공기 등 환경의 질이 개선됐으며, 보행 중심 교통으로 시민생활이 개선되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과속, 급속, 전면 개발에 따른 혼란과 주민들의 이해 갈등으로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골목길이 사라지고 전통 커뮤니티가 무너진 아쉬움도 크다. 최근 20년간의 서울 변화의 핵심이 주거공간 확보와 물리적 시설 개선에만 주로 초점이 맞춰진 탓이다.
지난 1993년 이후 도시 재생이 본격 도입되면서 재개발ㆍ재건축ㆍ뉴타운 사업이 과도하게 추진됐고, 이는 곧 전통이 밀리고 빈자가 쫓기며 다양성이 사라지게 되는 악영향을 초래했다. 전통과 현대화의 조화, 다양한 계층의 니즈 수용이 뒤범벅이 된 것이다. 이번 박 시장 체제의 도시 정책에 우선 기대를 거는 것은 이 같은 과속 개발의 일대 정리다.
물리적 환경 개선에 치중한 나머지 시민의 권리가 상실되고 빈자가 내몰리는 도시 개발은 개선돼야 한다. 예산 투입의 합리성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는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첫째는 미래 지향적 도시경쟁력 입장에서 봐야 한다. 보수와 서민 등 한쪽만을 봐서는 곤란하다. 전통을 우선하다 보면 현대 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죽은 도시로 변하게 마련이다. 지속적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런던은 월가의 헤게모니를 미국 뉴욕에 넘겨주면서 도시 활력을 잃었다. 런던의 보수성이 도시경제력을 상실케 한 것이다. ‘브라운 계획’ 등을 수립해 뒤늦게 경쟁력 확보에 나선 경험을 거울삼아야 한다.
서민을 위한 임대아파트 신축 등 주거난 해소가 급하다 하더라도 활력을 불어넣을 콘텐츠를 확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낡은 도시 피아트가 일자리를 중심으로 다시 태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원순 체제 도시 정책의 또 하나 과제는 사업 검토와 폐지 등을 신중히 검토하되, 시장을 중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집값을 잡는다며 가수요 이탈 정책에 매달리는 사이 수급 불안을 초래, 되레 집값만 올려놓은 오류를 반복해서는 곤란하다. 재개발ㆍ재건축ㆍ뉴타운 사업의 검토가 공급 지연을 초래해 심각한 수급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의 주택 공급은 신규 택지가 아니라 바로 재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현재의 주택 시장은 구조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집값 불안으로 매매보다는 임대를 선호하고, 중대형보다는 소형, 전세보다는 월세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수년 내 단독가구주의 비율이 선진국 수준인 65%를 넘어갈 것이다. 이 같은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장 변수를 철저히 파악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맞서야 한다. 공공 지원을 확대해 서민 주거 안정을 꾀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투자성이 짙은 강남권의 재건축 시장을 눌러놓을 필요는 없다. 공공 정책의 선명성보다 실질적 재원 확보와 다양성ㆍ공평성 확보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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