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설화문화전’개막
명품 토판염·선비 낙죽장도…
조촐한 소재속 우아한 기품
장르 초월 공예예술의 절정
우리의 격조 있는 전통예술이 새로운 미감으로 우리 곁에 왔다. 숨가쁘게 변모하는 현대문명의 급물결 속에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걷는 장인들이 만든 한지발이며 도자기 연적, 전통장석, 낙죽장도가 너른 공간에서 오롯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것도 루이비통, 까르띠에, 프라다 등 해외명품이 즐비하게 늘어선 청담동에서 말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가 우리 공예예술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한국적 아름다움을 이어가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설화(雪花) 문화전’이 올해로 5회째를 맞아 청담동 비욘드뮤지엄에서 개막됐다. 올해 주제는 ‘가설의 정원(假說의 庭園)’으로 문화는 유기적 복합체라는 가설 아래 문화 생태정원을 꾸몄다.
따라서 무형문화재 장인의 전통공예, 소금장인의 명품소금, 설치미술가의 현대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과거와 현재, 전통공예부터 설치미술까지 장르를 초월한 작품들은 우리 전통문화의 소통과 화합의 정신을 드러내며 색다른 한국의 미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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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설화문화전’은 전통공예·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소통과 화합의 정신을 보여준다. 위로부터 김선형 작가의 ‘가든블루’, 전용복 작가의 ‘설파’, 박문열 작가의 ‘전통장석’ |
전시장에 들어서면 눈부시게 하얀 소금밭이 관람객을 맞는다. ‘미술전시에 웬 소금밭이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토판염 소금장인 박성춘씨가 만든 엄연한 ‘작품’이다.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깨끗하고 영양 풍부한 바닷물이 가장 먼저 내려앉는 전북 신안의 소금이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함께 서울로 나들이한 것. 장판지를 깔고 만드는 흔한 천일염이 아니라, 전통 토판방식으로 일일이 손으로 대파질을 해가며 거둔 흰 보석(?)이 빛을 발하고 있다.
도예가 이영호가 만든 백자 연적과 필세(붓을 씻는 도자기)는 시서화를 즐기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은근한 풍류가 감지된다. 작고 조촐하면서도 간결한 백자들은 20세기 미니멀리즘의 현대적 조형미와 맞닿아 있다.
골동가구의 장식에 쓰이는 무덤덤한 두석을 만드는 박문열 무형문화재, 곧게 뻗은 대나무를 한 올 한 올 잘라 모시처럼 정교한 한지발을 짜는 유배근 전북 무형문화재의 작업도 멋진 디스플레이를 통해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또 오묘한 빛을 발하는 전복껍데기를 으깨 은하수처럼 화려한 우주를 만든 옻칠작가 전용복, 여인네들이 쓰던 은장도 대신 선비들이 쓰던 낙죽장도를 제작한 한상봉 무형문화재 전수자의 작품에선 기품이 절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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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의 아름다움은 현대의 시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사진은 ‘설화문화전’이 열리는 비욘드 뮤지엄 내부의 ‘가설의 정원’ 모습. |
흔히들 장인들이 만든 전통공예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나 이번 전시는 그 고정관념을 뒤집으며 어떤 현대미술보다 신선함을 만끽하게 한다. 이 밖에 올해 설화문화전에는 동양화가 김선형, 도예가 김윤동, 설치미술가 홍동희, 한지장 장용훈, 매듭장 전수자 박선경도 참여했다.
기획자인 김백선 아트디렉터는 “작품들을 유심히 들여다볼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것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지는 만든 이의 심상일 것”이라고 밝혔다. 2011 설화문화전에는 ‘명성황후 한글 편지’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11월10일까지. 무료관람.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