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안 10월 내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31일 전체회의를 소집했으나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이 위원장실을 점거, 의사봉조차 잡아보지 못한 것이다. 여야 원내대표와 정부 관계자가 FTA 피해산업 지원 대책을 밤새 마련하고 합의문까지 작성했지만 민주당 의원총회는 이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도대체 이 나라에 정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논란의 핵심 쟁점은 국가소송제도(ISD)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현지에서 불이익을 당할 때 국제기구의 중재로 분쟁을 해결토록 한 제도다. 왜 이 조항이 꼭 우리에게만 불리하다고 하는 것인가. 이미 우리가 외국과 맺은 85개 투자협정 중 81개에 적용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2500개 국제 협정이 채택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ISD로 발목을 잡는 것은 한마디로 한ㆍ미 FTA를 하지 말자는 소리고, 나아가 반(反)미국 성향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이 조항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7년 체결한 협상 원안 그대로다. 더욱이 당시 열린우리당의 협상 결과 평가보고서에서는 문제의 ISD에 대해 “우리의 대외 투자를 보호하고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고, 국내 제도 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평가단장이 바로 지금 김진표 원내대표다.
민주당의 FTA 반대는 최소한의 논리도 명분도 없다. “그때는 중요한 것인지 몰랐다, 까막눈이었다”는 말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할 소리인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자인하는 꼴이다. 민주당이 이런 비난을 무릅쓰고 결사 반대하는 것은 야권 통합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민노당과 좌파 세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수권정당이라면 이래선 안 된다. 국가 이익을 따져 결정해야지 정치적 이득에 올인하는 정당을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국민의 절반 이상은 조속한 국회 비준과 발효를 바라고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외화 수입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한ㆍ미 FTA 실패 책임을 모두 뒤집어쓸 참인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168석의 다수당이 더 이상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여야 원대대표의 합의가 깨지는 마당이라면 강행처리를 불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용기도 없이 재집권을 바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