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강영숙의 아파트는 그런 바깥의 위협적인 폭력과 악취로부터 보호해주는 마지막 보루지만 안전지대는 아니다.
2년여 만에 펴낸 강영숙의 네 번째 소설집 ‘아령하는 밤’(창비)은 일상 속 불안과 악몽에 부대끼는 허약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엔 2011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문래에서’를 비롯, ‘아령하는 밤’ ‘죽음의 도로’ ‘재해지역투어버스’ 등 불안한 도시의 일상을 보여주는 9편의 소설이 연작소설처럼 도시의 어둠 속을 따라간다.
작가가 작품에서 즐겨쓰는 기법은 강한 대조를 이루는 콘트라스트다.
구제역을 소재로 한 ‘문래에서’는 피냄새가 엉긴 무거운 쇳내가 밀크초콜릿의 단내와 날카로운 대비를 이룬다. 몸이 허약한 여자를 위해 부부가 찾아든 농장은 다름 아닌 죽음의 구덩이. 농장일을 하러 간 남자는 지독한 죽음의 냄새를 온몸에 묻혀오고 남자는 끝내 앓아눕는다. 피비린내를 막아내는 방법은 밀크초콜릿바. 죽음의 도시 Y와 이사오기 직전 살았던 문래의 활기, 생기발랄한 동명의 젊은 여자애와 나는 딴세상 같다.
‘아령하는 밤’은 악취 나는 오염된 공단지대에서 벌어지는 연쇄 강간살해사건을 포장된 유머로 가볍게 전개시킨다. 특히 달빛 아래 아파트에서 아령을 하는 강한 노인의 존재는 그로테스크하다. 노인이 아령을 한 날이면 강간살해사건이 벌어지고 노인이 여자아이와 가는 모습이 목격되는데. 칠칠치 못한 할머니로 암시되는 나는 그를 선망과 두려움이 섞인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쫓는다. 심지어 나의 환상 속에서 노인은 어려움을 알아서 해결해주는 달콤한 대상이다. 하수구의 악취를 석면테이프로 꼼꼼히 막아주기도 하고, 오염된 물 대신 맑은 물을 갖다주기도 한다. 오염된 바깥세상으로부터 그렇게 방어진을 치지만 아파트 안 역시 변기가 막혀 오물이 흘러넘친다.
‘불안한 도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불행이 재해 이상으로 파괴적일 수 있음을 증언한다.
작가가 그려내는 도시의 어두움은 추악하지만 칙칙하지 않다. ‘죽음의 도로’에선 쉰 살도 안 된 나이에 깔끔하게 자살에 성공한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나는 배다른 동생과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다. 죽음의 도로에서 역시 자살을 꿈꾸는 나의 자살에 임하는 태도는 쿨하다. 도서관 정보실 직원에게 마지막 심경을 메일로 남긴다. “저는 오늘 자살할까 합니다. 제가 대출해간 자료는 반납할 수 없으니 새로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음의 도로를 돌아 태연히 집으로 돌아온다.
‘재해지역투어버스’는 허리케인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진 뉴올리언스의 암울한 재해현장을 돌아보는 코스지만 재즈의 활기가 있다.
강영숙 소설의 성취는 도시의 끔찍한 사건과 악취를 방어하는 주인공들의 심리적 기제를 세밀히 포착한 데 있다. 그래서 덜 끔찍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우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