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 선비와 18세 기생의 농밀한 성애를 다룬 ‘북상기’(北廂記, 김영사)가 발굴된 지 4년 만에 번역 출간됐다. 2007년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가 찾아낸 북상기는 중국어 구어체 문장인 백화문(白話文)으로 쓰인 조선시대 극본으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홍천의 사대부인 낙안은 자신의 환갑잔치에서 기생 순옥에게 넋을 잃고 연애편지를 보내나 퇴짜를 맞는다.
낙안은 순옥의 의붓어미인 봉래선에게 으름장을 놓고 순옥을 버리지 않겠다 약속한 후 결국 합궁을 이룬다.
하지만 이부사와의 내기 바둑에서 진 낙안은 담배 500근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이자 순옥을 이부사에게 노비로 보내 갈음하려 한다. 이에 봉래선은 이부사를 유혹하여 내기를 무효로 만들고 낙안을 골탕 먹인다는 내용이다.
북상기의 특징은 단연 농도 짙은 성애 묘사에 있다. 사타구니가 아프다며 꾀병을 부리는 순옥과 병난 데를 치유하자는 낙안이 무람없이 주고받는 대사와 수작은 노골적이다 못해 외설적이다.
이는 1840년 이전으로 추정되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볼 때 파격을 넘어선다. 충효열을 내세운 유교의 이념적 속박에서 벗어나 주류를 부정하고 반박한 작품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질펀한 애정행각을 다뤘다 하여 단지 ‘음란서생’의 삿된 작품만도 아니다.
농치는 듯 문장에는 해학과 기지가 넘치고 사랑을 빗댄 풍성한 인용으로 볼 때 저자인 동고어초(東皐漁樵)는 고전에 밝은 사대부라 능히 짐작할 만하다.
형식 면에서도 명청(明淸) 희곡과 판소리를 완벽하게 융합했다는 점에서 19세기 희곡 갈래에 풍요로움을 더한다. 한국 문학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작품으로 봐도 거리낄 게 없다.
안대회 교수와 서울대 중문과 이창숙 교수가 함께 옮기고 꼼꼼한 주석을 붙여 이해를 도왔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