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씨를 안 건 4년쯤 됐다. 처음 만난 날 그는 서울 청담동의 서미앤투스 갤러리에서 독일사진가 토마스 스트루스(57)의 박물관 내부를 찍은 사진을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와졌다. 이후 가회동의 우리 화랑이며 여러 화랑에서 종종 만났는데, 어떤 작품 앞에선 말없이 오래 머물곤 했다.
그는 그림도 이따금 산다.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귀로 듣고 사는 게 아니라, 눈으로 산다는 점이다. 철저히 자신의 안목대로 고르고 산다. 눈과 마음이 열려 있다. 본인에게 주어진 예산 내에선 결단도 빨리 내린다. 계산도 정확하다. 질질 끌지 않는다.
아직 검증이 덜 된 젊은 작가 작품을 사는 걸 조금 고민하긴 하나 컬렉션을 어떻게 가져갈지 목표가 서 있다. 이름 난 해외 유명작가를 따라가기 급급한 컬렉터와는 궤를 달리 한다. 요즘 많은 수집가들은 눈 보다는 ‘귀로 듣는 것’에 의존한다. "앞으로 이 작품 오를 것"이라고 해야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정재 씨는 자신이 끌리는 그림이라면 다소 실험적이거나 난해해도 주목한다.
그와 나는 ‘아트바젤 같은 중요한 아트페어를 함께 둘러보자’고 수년째 별러왔지만 계속 무위에 그쳤다. 그러다가 올들어 이 씨가 내가 참가한 런던의 ‘프리즈(Frieze) 아트페어’를 찾아왔다. 겨우 2박3일의 숨가쁜 일정으로. 그런데 작품을 둘러보는 그 눈이 정말 예리했다. 좋은 그림을 잘도 찾아냈다. 그로테스크한 것도,실험적인 것도, 예쁜 것도 섹슈얼한 것도 가릴 것 없이 폭넓게 좋아했다.
우리 화랑이 프리즈에 들고나간 이정(39) 작가의 네온설치 사진작품인 ‘You’, ‘I love You with all my heart’도 좋아했는데 외국 컬렉터와 딜러들이 진작에 몽땅 사가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그러자 "해외서 한국 젊은 작가 작품이 큰 호응을 받는 걸보니 참 좋다"며 반겼다.
정리=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