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예리하게 포착
영상·설치작으로 선보여
김주현 ‘회로에서’
오묘한 예술이 된 현대과학
수백개 LED에 의미 부여
최근 들어 미술계에서 한국 여성 작가의 약진이 눈부시다. 세계 무대를 휩쓰는 한국 작가 중 여성 작가가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임민욱ㆍ김주현은 탐구하는 정신으로 성찰적 작업을 선보여 크게 주목받고 있다. 남다른 예술적 경쟁력을 갖춘 두 작가가 서울 북촌과 서촌에서 나란히 개인전을 갖는다.
▶북촌에서 신작 선보이는 임민욱, ‘Liquide Commune’ =급변하는 한국사회와 구성원의 관계를 예리하면서도 참신하게 포착해온 임민욱(43)이 종로구 화동의 PKM갤러리와 BB&M에서 ‘Liquide Commune’이란 타이틀로 개인전을 개최한다. 다소 난해한 타이틀의 이번 전시는 영상작품을 선보이는 Part1과 회화 및 설치작품으로 이뤄진 Part2로 나뉘어 진행된다.
지난달 초 시작된 Part1 Screening은 공공장소에서 행해진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완성된 영상작업으로 구성됐다. Fire Cliff1(마드리드)와 S.O.S 등 총 4편의 영상물은 지극히 극적이면서도 시적이다. 동시에 다큐멘터리적 뉘앙스도 품고 있는 것이 특징. 임민욱의 영상은 세계화ㆍ현대화라는 도도한 흐름 속에서 숨가쁘게 달라지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적 풍조와 이에 상응하는 한국사회의 토착적 특수성을 특유의 날선 시선으로 짚어내고 있다.
10일 시작될 Part2는 PKM갤러리와 BB&M 두 곳에서 펼쳐진다. 작가는 인조모피ㆍ벨벳ㆍ동물뼈ㆍ라텍스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유기적이면서도 구조적인 형상을 빚어내고, 이를 설치 형식으로 꾸민다. 보는 이의 시각과 촉각을 자극하는 원초적이고 매혹적인 설치작업은 구체적인 역사와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 신화, 문명 등 보다 상징적이며 추상적인 영역으로 작가의 예술적 더듬이가 넓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민욱은 파리1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으며, 다수의 해외전에 참가해왔다. 지난해에는 리버풀 비엔날레와 로테르담 현대아트센터의 특별전에 참가했으며, 2007년에는 유망 작가에게 수여되는 ‘에르메스미술상’을 수상했다. 내년 봄에는 미국의 유력 미술관인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이 잡혀 있다. (02)734-9467
▶서촌에서 전시하는 김주현, ‘회로에서’ =단위가 되는 개체의 결합을 통해 유기적인 구조를 연구해온 조각가 김주현이 ‘회로에서(On the Circuit)’라는 타이틀로 1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시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버려진 선풍기날개, 깃털을 매단 긴 막대를 들고 변두리를 누비는 음악가를 촬영한 임민욱의‘ Portable Keeper’. 잃어버린 꿈과 새 희망이 공존하는 폐허 속 삶을 그렸다. [사진제공=pkm갤러리] |
김주현은 스스로의 일상에서 채집한 다양한 작업 아이디어를 입체로 구현한다. 석고ㆍ종이ㆍ경첩ㆍ철재ㆍ목재 등 일상 속 흔한 소재로 프랙탈, 카오스, 복잡성 같은 어려운 현대과학의 원리를 가시화해온 작가는 이번에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전기회로를 활용했다. 신작 ‘회로에서-접속’은 전선을 흐르는 한 쪽 극의 전기와 바닥에 놓인 금속판의 또다른 전극이 피복이 벗겨진 가느다란 철사를 통해 접속되며 수백개의 LED를 밝히도록 고안된 작업이다. 서로 다른 두 전극이 만나 스파크가 일 듯 발생하는 빛의 눈부신 효과를 통해 접속의 의미와 상호관계성을 탐구한 것.
관람객은 작가가 설정한 규칙을 통해 확산되는 회로와 그 가운데 찬란히 발생하는 전기를 바라보며 ‘오묘한 예술이 된 현대과학’을 음미할 수 있다. 작가는 “현대과학과 수학을 연구해가며 작업을 구상하고, 그 설계도를 입체화하는 게 무척 즐겁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미대를 졸업한 김주현은 1993년부터 1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2005년 김종영미술관에서 연 ‘확장형 조각’으로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으며, 2009년 록펠러파운데이션의 레지던시에 참가하는 등 작품성을 평가받고 있다. (02)720-3031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