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걷기는 특별하다. 운동이라기보다 사색에 가깝다. 이마에 스치는 공기 한 자락에서 우주를 타고 넘는 시인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길이 따로 있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가 겨울호 특집으로 정진규, 허영자, 강은교, 김용택, 문정희 시인등 16명의 시인들이 좋아하는 산책길로 꾸몄다.
4년전 서울을 떠나 생가인 안성시로 옮긴 정진규 시인의 산책은 성묘에 가깝다. 시인은 매일 아침 영ㆍ정조 때 영ㆍ우의정을 지낸 두 분 할아버지를 포함한 선대 어른들의 묘원인 기유원(己有園)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한다. 300년전 조상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수백년 솔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로 샤워하는 복을 누린다.
허영자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 비원의 서쪽인 원서동에 살았다. 그 때 비원은 항상 문이 열려 있었고 아침이면 운동을, 오후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이 가까웠던 시인은 자주 창덕궁의 숲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고궁의 뜰을 맘껏 사색의 노트로 삼았다.
문정희 시인의 사색은 두 갈래다. 선릉 숲길과 봉은사 뒷산이 그 하나, 다른하나는 코엑스 주변광장이다. 집필에 지친 날은 코엑스 코스를 잡아든다. 시인은 그 곳의 활력을 호흡하며 시간의 무늬들을 즐긴다.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변 작은 길은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며 저절로 생긴 강길을 걸어 6년동안 학교에 다녔다. 선생이 되어 그 길을 또 걸었고 그 길위에서 시를 썼다. 그 길은 그의 시의 원천인 셈이다. 지금 시인은 전주의 작은 산을 산책한다. 화산이라는 전주 복판에 자리잡은 원시를 닮은 숲길에서 자신의 발소리를 박자삼아 시를 짓는다.
이 밖에 허영만 시인의 산책길 여의나루, 문충성 시인의 제주 별도봉 산책길,김사인 시인의 동네 골목길 등 시인이 사랑하는 길들이 여러갈래로 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