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의 묘미는 단단하게 조인 타이트한 코르셋 같은 소설에 담지 못한 작가의 내면과 내면의 그림을 이룬 사소한 것들을 주워듣는 맛이다. 때로 그 속에서 사금파리처럼 새롭고 반짝이는 의외의 수확도 건질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비채)은 그가 30년 남짓 소설을 쓰면서 이런저런 지면에 써온 다양한 글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 ‘진정한 자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4장의 원고지로 담아내는 우회적 글쓰기부터 좋아하는 작가인 잭 런던의 틀니 이야기, 자신의 문체와 이야기에 대한 소설 쓰기, 그의 글에 빠지지 않는 음악과 음식 이야기 등 에세이를 비롯해 책의 서문, 해설, 각종 인사말, 짧은 픽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뷔페처럼 다채롭다.
소설의 뒷얘기격에 해당하는 이야기 가운데 그를 유명하게 만든 소설 ‘노르웨이의 숲’과 비틀스에 관한 얘기는 흥미롭다. 하루키는 노르웨이 숲이 오역이고, 노르웨이산 가구라는 의견에 대해 “번역자로서 한마디하자면 “ ‘Norwegian Wood’라는 어휘의 정확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Norwegian Wood’일 뿐, 그 밖의 해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잘못된 게 아닐까”라고 입장을 밝힌다. 비틀스의 가사 자체가 맥락상 모호함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내세운다.
하루키로부터 듣는 짐 모리슨에 대한 회고도 남다르다. 1967년 ‘라이트 마이 파이어’의 짐 모리슨은 그와 동일시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 시절 젊음들은 모두 짐 모리슨이었다. 짐 모리슨의 공백은 10여년이 넘은 시점까지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남는다.
2000년께 쓴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에 대한 글은 처음 공개됐다. ‘도쿄 지하의 흑마술’이란 제목으로 미국 어느 잡지의 의뢰를 받고 썼지만 결국 실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1995년 한신 대지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일본 열도를 더 큰 도가니 속으로 몰고 간 옴진리교의 사린 사건을 바라보는 하루키의 시선은 깊고 넓다. 안전한 일본에 대한 환상의 박살, 일본 산업사회의 중추를 떠맡아야 할 엘리트들의 일탈이 가져온 충격을 작가는 ‘순수의 시대’의 단절로 표현한다. 특히 ‘시라케 세대’로 불리는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시대 이후 등장한 뒤늦은 시대의 낭패감과 부와 풍요를 향해 달음질쳐온 뒤 방향성의 상실, 사회의 경제적 발전과 개인의 행복 사이의 거리 등 이들 세대의 특징과 문화를 세심하게 살핀다.
번역가로서의 하루키의 모습을 만나는 것도 특별하다. 고전이 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매력, 챈들러의 ‘롱 굿바이’를 여러 번 되풀이해 읽은 이유, 마니아층이 형성된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하루키의 각별한 애정 등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번역하는 일의 의무감, 즐거움이 읽힌다.
워낙 다양한 글이 섞여 있다 보니 입맛대로 골라 읽는 이점이 있다. ‘폼나게 나이 들기는 어렵다’ ‘포스트코뮤니즘 세계로부터의 질문’ 등 인터뷰와 대담 등도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만하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처럼 늦게 도착한 뜻밖의 편지를 펴보듯 시간차에서 오는 묘한 맛이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