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약점 공격하는 혐오
권력 비판하는 풍자와 달라
‘이현령비현령’모욕죄 폐지
혐오행위 규제법 제정 필요
개그맨 최효종에 대한 한 정치인의 고소를 두고 그 정치인을 탓하는 여론이 드높다. 하지만 문제는 모욕죄 자체에 있다.
모욕행위 자체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모욕은 타인에 대한 경멸의 감정 표현인데, 이러한 감정표현 자체는 해악이 발생할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없다. ‘2mb18noma’라는 트위터 계정이 대통령의 국정능력이나 국위를 손상한다고 믿는다면 모를까. 물론 명예의 훼손은 그러한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으로 인정되지만 모욕행위는 법학교과서들이 말하는 통설과는 달리 명예의 훼손이 아니라 ‘명예감정’의 훼손이다. 타인에게 경멸적인 언사를 사용한다고 해서 제3자들이 그 언사의 대상인 사람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말한 사람이 감정통제를 잘 못하거나 언어표현이 과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언사의 대상은 불쾌할 것이고, 이 모욕감을 막고자 하는 것이 모욕죄이며, 법원 판례들도 실제로는 그렇게 기능하고 있다.
그런데 타인의 감정표현에 내가 기분이 나쁠지는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 표현의 맥락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친구가 나에게 “오랜만이다, X끼”라고 하면 반갑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이 그러면 화가 난다. 교수가 학생에게 “국내의 최고 대학생 수준이다”고 하면 칭찬이지만, 학생이 교수에게 같은 말을 하면 모욕적이다.
이렇게 애매하기 때문에 모욕죄는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국민들의 카타르시스적 감정표현을 봉쇄해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을 거세하는 데 동원될 위험도 있는 것이며, 이를 최효종 케이스에서 볼 수 있다. 국가기관인 검찰이 기소하는 중범죄로서의 모욕죄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 유일하다. 위헌적인 법률이며 하루빨리 폐지돼야 한다.
그러나 강용석이 아나운서에 대해 저지른 것은 모욕이 아니라 혐오다. 혐오도 모욕의 일종이지만, 차이점은 그 사회가 법적으로 보호대상으로 정한 소수자들에 대해 그 소수자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조작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혐오 행위를 규제하는 법은 많은 선진국들이 가지고 있다.
아나운서들도 자유로운 비판과 조롱을 감수해야 할 공인이다. 하지만 강용석은 아나운서들을 폄훼한 게 아니라 ‘여성’ 아나운서들을 폄훼한 것이고, 특히 여성의 소수자적인 측면에 소구해 폄훼했다. ‘여성 아나운서들은 몸을 줘서 승진한다’는 표현은 역사 속에서 여성들을 차별하고 핍박해왔던 논리 중 하나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는 공인이라도 그가 소수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정체성을 공격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인으로서 비판과 조롱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를 ‘깜둥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보호되지는 않는다.
최효종도 ‘여성’국회의원들 전체를 ‘오로지 미모나 성적 매력만으로 당선됐다’고 조롱했다면 강용석과 비슷한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최효종의 개그는 여당 국회의원들을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공인으로서 조롱한 것이며 당연히 보호돼야 한다.
이제 선택은 명백하다. 최효종의 입을 풀고 강용석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모욕죄를 폐지하고 소수자들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혐오죄를 제정할 때가 왔다. 헌법재판소가 강용석 사건에 대해 모욕죄 위헌을 선언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시작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