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작가 19명
비디오작품 120여점 선봬
1세대 실험적 예술혼 조명
관람객에 超물질적 체험도
‘오감이 아니라 육감?’
한국의 미디어아트 25년사를 총정리하는 ‘육감 마사지(The Sixth Sense Massage)’전이 서울 종로구 서린동 아트센터나비(관장 노소영)에서 최근 개막됐다. 전시 제목은 ‘오감을 만족시킨다’는 미디어에, 예술적 감각까지 부여해 육감(六感)을 만족시키겠다는 뜻에서 정해졌다. 여기에서 ‘아트적 감각’이란 신령스러운 예감이나 창조적인 착상을 불러오는 영감(靈感)을 의미한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미디어아트가 걸어온 길을 통사적으로 정리한다면서 미술관 측은 불과 19명의 작가만 선정했다.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전시를 기획한 독립 큐레이터 류병학 씨는 “세계 현대미술사에서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남준 선생이 1960년대부터 국제무대에서 비디오아트를 선보이긴 했으나, 정작 이 땅에서 비디오아트를 가장 먼저 시현한 작가는 박현기(1942~2000)다. 박현기를 국내 미디어아트의 시작으로 꼽고 그 이후로 꾸준히 작업해온 이들만 골랐기 때문에 숫자가 압축됐다”고 밝혔다.
백남준이 비디오아트의 신기원을 연 것은 분명하지만 80년대에 이르러서야 국내에 본격적으로 작업이 소개된 만큼 77년 ‘대구 현대미술제’를 통해 비디오 작품을 선보인 박현기가 한국 미디어아트의 선구자라는 분석이다. 이후 대구, 대전 같은 지방 작가들이 미디어아트 초반기를 주도했다는 설정은 지금까지 수차례 열렸던 기존 전시와 다소 궤를 달리한다는 점에서 도드라진다.
이에 따라 박현기를 기점으로 김해민, 육태진, 이용백, 박화영, 김수자, 김승영, 김세진, 김창겸, 전준호, 한계륜, 구자영, 류비호, 장지아, 양아치, 이이남 등 작가 19명의 영상 120여점이 한데 모였다. 또 오브제 작품 3점도 전시되고 있다.
박현기는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남준 선생보다 비디오아트를 국내에서 먼저 시현했던 작가. 다음달 30일까지 열리는 ‘육감마사지展’은 한국의 장르적 출발점과 발전상을 아우른다. |
1세대 미디어아티스트들은 아무런 기반과 지원도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야생풀처럼 뻗어왔다. 특히 미술 시장으로부터는 ‘천대’에 가까운 대접을 받으면서도 실험적인 예술혼을 굽히지 않았다. 또 90년대 말 이후로는 해외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이 한국 미디어아트의 중심으로 부상하며 폭과 결이 다양하고 풍성해졌다. 이들 작가군이 있었기에 한국 미디어아트는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류병학 씨는 “ ‘육감 마사지’전은 대한민국 미디어아트의 ‘과정’을 되짚어보는 기획전이지, 회고전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초대된 작가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오늘도 활발히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손으로 잡히는 회화나 조각과는 달리, 초(超)물질적인 미디어아트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을 수용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고루한 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예술적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리인 것.
박현기 비디오연못(위부터),‘진주귀고리를 한 소녀’를 차용한 이이남의 작품. |
노소영 관장은 “아트센터나비의 10년을 회고하고, 나비의 2.0시대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려 한다. 그 플랫폼은 대한민국 미디어아트를 기반으로 삼지 않고선 무의미할 것 같아 ‘육감 마사지’전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담은 480쪽짜리 대형 도록도 발간됐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02)212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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