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2편’의 저술을 마무리 지어 달라.”
145년 만에 외규장각 도서의 영구 귀환을 일궈낸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83) 박사가 22일 프랑스 파리 잔가르니에병원에서 눈을 감으며 남긴 유언이다. 평생 타국살이를 하며 우리의 가려진 역사적 진실을 찾아 알리는 데 전념해온 박 박사의 마지막 순간은 그렇게 고국을 향해 있었다.
지난해 1월 경기도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은 뒤 10개월 만에 파리로 돌아간 그는 지난 8월 재수술을 받고 요양을 해왔으나 최근 급격히 병세가 악화됐다.
‘프랑스 유학생 1호’로 1955년 프랑스 유학을 떠난 그에겐 숙제가 있었다. 은사인 사학자 이병도 박사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고서들을 약탈해갔다는 얘기는 있는데 확인이 안 된다”며, 가면 한번 찾아보라는 얘기였다.
그는 도서관과 박물관 등을 10년 이상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1975년에 베르사유궁에 파손된 책을 보관하는 곳에서 파란 보자기에 싸인 책 한 권을 만나게 된다. 그는 먹향이 확 끼쳤던 순간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고 회고했다.
그는 고국에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알렸다는 이유로 사서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그에 앞서 그는 프랑스국립박물관에서 직지를 찾아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해내기도 했다. 한국의 활자사 관련 연구가 너무 빈약해 일본ㆍ중국의 인쇄사를 밤을 꼬박 새우며 읽어, 눈은 늘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고국의 학자들에게 도움과 조언을 구하면 “할 일이 그렇게 없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6월 외규장각 도서 반환 기념행사 참석차 방한한 그는 “이제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을 밝히기도 했다. 오랜 타국살이에서 벗어나 자신이 찾아내 고국의 품에 안긴 외규장각처럼 평안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슬픈 역사의 한 자락을 단서로 쥐고 ‘조선왕실의 혼’을 찾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한국에서의 교수직도 거절하며 안락한 삶과도 멀어졌던 그는 외로운 연구생활을 이어왔다.
와병 중에도 그는 조선의궤를 프랑스어로 자세히 설명한 ‘조선조의 의궤’ 증보판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평생 애써온 외규장각이 안심이 안 됐는지 “국민이 합심해 소유권을 넘겨받도록 노력해 달라”고도 했다.
이제 외규장각에 붙은 ‘영구 임대’의 딱지를 떼는 일은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박동미 기자@Michan0821>/pd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