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카우치에 누워있다. 옆에 한 사람이 앉아있다. 떠오르는 내 얘기를 들어준다. 그 사람에게 하고싶은 말을 한다. 하고싶지 않으면 그냥 있는다. 불현듯 여러번 반복되던 강물에 대한 꿈이 내 눈물을 상징한다는 걸 알아차린다. 눈물이 차오른다. 날 건드린게 무언지 알 수는 없다.'(내담자)
'미영씨가 우는 동안, 나는 그녀가 외롭지 않게 울도록 잘 지켜보고 있었다. 혼자 울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존재감이 드러나진 않되 존재감은 느낄 수 있도록, 단 한 번도 눈길을 떼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187쪽)
[북데일리]<상처 떠나보내기>(2011.예담)는 정신분석가 이승욱씨의 신간이다. 내담자의 곁에서 두 손을 맞잡듯, 지켜볼 줄 아는 사람이 그다. 내담자로선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을 명품처럼 대접받는 일이다.
이 책은 가슴 깊은 곳의 상처를 다시 경험하고, 깊이 이해하고, 끝내는 받아들임으로써 떠나보내는 힘겹고도 기쁜 과정에 참여한 다섯 사람의 기록이다.
대학 졸업 후 7년간 교사로 생활하다 서른을 훌쩍 넘겨 뉴질랜드로 떠나 새롭게 찾은 길. 정신분석과 철학은 그를 어쩌면 '가지 못했을 길'로 접어들게 했다. 그 길에 들어서보니 왜 무 자르 듯 한국을 떠나야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학생 개개인을 보살필 수 없는 현실, 동료 전교조 교사들의 해직이 한 가지 동력이었지만 이미 그는 그곳으로 가도록 운명지어져 있었던 듯 하다.
뉴질랜드의 학제는 4년간의 학업과 수련과정을 마쳐야 정신분석 석사를 취득할 수 있었다. 50여 명의 동기 중 네 명 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하고 어려웠다. 그 네 명 안에 든 저자는 다섯 분의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심리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네 분의 공통된 답은 "관계", 한 분은 "내담자 한 명 한 명이 내게는 화두다."라 했다.(5쪽)
정신분석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꿈을 꾼다고 한다.
'선생님이 가만히 들어와 옆에 앉더니 자신의 머리를 무릎에 얹어주었다. 부드럽게 웃으며 내 머리칼을 곱게 쓰다듬어 주었다. 너무 편안해서 울다가 깼다. 실제로도 울고 있었다.'(146쪽)
이는 완전한 대상, 나의 모든 걸 알아주고 받아줄 것 같은 존재에게 다가가고 싶은 무의식적 표현으로 보여진다. 분석가는 그 내용을 통해 결핍과 불안, 우울의 근원인 무의식의 골목골목을 탐색한다. 그 길의 끝까지 함께 간 그는 홀로 설 때까지 가만히 지켜봐 주다가 서서히 놓아준다.
결과는 놀랍다. 수도 없는 자살기도로 위기에 빠졌던 130Kg의 여인,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된 21살 청년, 죽을 것 같던 분노로 견딜 수 없어하던 여인... 이들이 극적인 반전을 한다. 그야말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어느 드라마가, 어떤 소설이 이처럼 곡진하고 감동스러울 수 있을까. 거기에 솔직하고 겸손한 저자의 고백이 더해지니 그 울림이 클 수 밖에 없다.
“서양인들이 고통을 받는 원인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체험한 가족해체나 애정결핍 등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혹은 다른 사람이 왜 내게 이런 행동을 할까에 더 관심이 많고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죠. 타인에게 기대려 하고 남의 시선을 중요시하니까 주변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실망이 커집니다." -경향신문 2011.5.21
때로 자신을 보는 일이 힘들어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저자는, '걸려 넘어진 돌을 딛고 일어서 오히려 디딤돌로 쓰라.'고 한다.(58쪽) 무지한 평안보다 고통스러움을 넘어 경계를 넓히라고. 아니 무지함은 진정한 평안을 답보할 수 없다고, 용기를 내라고 간절하게 설득한다.
몇 년 전. 저자와 함께 한 시간이 있었다. '라캉'과 '꿈분석'의 장에서였다. 안국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와 3분 쯤 걸어가면 나오던 '닛부타의 숲(회복의 숲)', 등받이가 있던 낮은 의자와 앉은뱅이 책상, 가장 편한 자세로 만들 수 있게 해 주던 두툼한 방석들. 일곱 명의 수강생들은 편안히 앉아서, 때론 웃으면서, 울면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괴로워하면서 12차시를 함께 했다.
그 시간이 끝날 때 쯤 일곱 명 모두가 풍성한 '은혜'속에 있었음을 고백했다.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장 귀한 명품이라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