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FTA 비준안 강행처리에 반발한 민주당의 장외투쟁으로 국회가 올 스톱, 새해 예산안과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가 막막해졌다. 파행이 지속되면 법정시한인 다음 달 2일까지 새해 예산안 합의처리는 사실상 또 불가능해진다. 340조원에 육박하는 새해 예산안을 제대로 다루려면 날밤을 새워도 어려운데 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 아예 담요를 깔고 누웠다. 결국 막판 몰아치기에다 여당 단독처리가 재연될 공산이 크다.
새해 예산안에 관한 한 여야는 합의처리하겠다는 다짐을 누차 해왔다. 그동안 법정시한 넘기는 것이 예사로 돼와 국민 지탄이 컸기 때문이다.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명백한 의무다. 그것도 꼼꼼히 따져 국민 부담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그럼에도 당리당략 정쟁에 시간을 허비하니 예산안 심의는 벼락치기 일쑤다. 부실심사에 졸속처리를 막기 위해서라도 예산안 처리 방식에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회기일이 100일인 9월 정기국회는 아예 예산 국회로, 6월 국회는 국감과 결산 국회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산안 심사도 버거운데 국정감사, 예산집행 결산까지 겹치니 수박 겉핥기 식이 되는 것이다. 6월에 국감과 예산결산을 엄격히 처리, 정기국회 새 예산 심의과정에 반영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물론 심의과정의 투명성 확보는 더 시급하다. 2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12명의 계수조정소위 위원이 수백조원대의 예산안을 떡 주무르듯 하니 밀실심의에 나눠먹기 식이 된다. 계수조정소위원회가 열리는 회의장 주변에 민원성 ‘쪽지’가 난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예산심의에 임하는 의원들의 자세가 문제다. 지역사업 따기에 혈안인 의원들의 무제한 욕구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올해는 상임위별 예비심사 과정에서 정부 제시안(326조원)보다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국회에서 깎는 게 원칙인데 이건 너무 심하다. 누가 봐도 내년 총선에 대비, 선심성 사업과 복지예산을 부풀린 결과다. 이대로 둬선 안 된다. 내년 경제성장률 4.5%를 상정한 정부 예산안은 경제여건을 감안, 늘리기보다 삭감이 불가피하다. 감세니 증세니 따지기 전에 예산부터 잘 짜는 것이 납세자인 국민에 대한 기본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