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울하고 고독한 시대에도 문학이 있다는 것에 나는 아직도 설렌다.”
소설가 신경숙이 ‘종소리’ 이후 8년 만에 여섯 번째 단편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을 냈다.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등 장편으로 내달려오면서 중간 중간 숨고르기를 하며 쓰고 싶은 걸 쓴 작품들이다.
표제작 ‘모르는 여인들’을 비롯한 7편의 단편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지난 8년 중 가장 침울했을 때, 내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쓴 것들이다.
작가에게 문학은 세상과 관계에 대해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 하는 일종의 말하기 방식인 셈이다.
작가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주목한다. 말하지 못하는 것은 눌리고 아픈 것들이다. 상처받고 힘없는 이들이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어떻게 감당하며 치유해 나가는지 작가는 보여준다.
‘세상 끝의 신발’은 소통의 방식을 신발로 풀어낸다. 언제든 벗어주고 비워주는, 또 사랑하는 이의 빈 신발에 가만 발을 넣어보며 따스해하는 작고 낮은 사람들의 얘기다. 소설은 낙천아저씨의 부음을 아버지로부터 듣는 데서 시작한다. 전쟁통에 열다섯 살 소년병은 달릴 수 없는 신발을 꿰차고 있던 열여섯 살 소년병에게 자신의 멀쩡한 신발을 내어준다. 열다섯 살 소년병이 낙천아저씨다. 열여섯 살 아버지와 낙천아저씨는 그 후 마을에서 함께 의지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린 시절 맑고 다정했던 낙천아저씨의 딸, 순옥언니를 닮고 싶어 한다. 도시로 간 언니가 집에 인사 온 날 부츠에 발을 가만 넣어본다. 그런 순옥언니는 결혼과 함께 무너지면서 이혼과 자살 시도 끝에 결국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애처럼 돌아온다.
‘모르는 여자들’도 신발로 귀결된다. 나와 채, 채와 아내, 나와 남편의 얘기가 겹쳐지며 사랑을 묻는다. 이십년 전 남자친구 채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나는 당황한다. 그가 내보인 건 그의 아내의 노트. 거기엔 도우미 아주머니와 나눈 메모가 담겨 있다. 암에 걸린 아내는 남편이 병을 모르겠으면 한다. 채는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서 도망친 이유를 이십년 전 그를 떠난 여자에게서 듣고 싶어 한다. 그때 나는 왜 채를 떠났던가. 이유는 “군화 때문이었다.” 군화 속 땀에 전 발에서 나는 삶의 구차함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듯하다. 그의 발은 버림을 받은 걸까.
남자친구 창에게 버림받은 뒤 말더듬과 식이장애에 걸린 나의 말문을 트게 해준 죽은 여자와의 대화와 식사(‘화분이 있는 마당’), 의지와 상관없이 목을 조르고 뺨을 때리는 등 제멋대로 움직이는 아내의 왼손 이야기(‘그가 지금 풀숲에서’)는 말해지지 못한 것들의 비명을 들려준다.
하나의 사물과 이미지에 이야기코를 걸어 쫀쫀하게 짜나가는 데 탁월한 작가는 이번 단편집에서 그 솜씨를 더 유감없이 발휘한다. 아프면 아픈 대로 스스로 감당해내려 애쓰는 표나지 않는 사람들의 얘기를 서두름 없이 한코 한코 꾹꾹 떠가는 걸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온전한 형태를 짐작하지 못한다. 짐짓 이러려니 하지만 나중에 모양새를 보면 섬세하고 생생함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거기에 신경숙 문학의 힘이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