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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야금의 愛人, 황병기
매일밤 서로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단 하루도 떠나 살지 않았던, 가야금과 가야금 연주자의 60년 연애사
LG 다니다 삼성 다닌다고 연애 그만 두나요? 

대학 졸업한다고 연애 안 하나요?

명동극장 지배인, 화학회사, 출판사, 영화제작

많은 일 거쳤어도 난 가야금과 끊임없이 연애 해 왔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건 산골 약수같은 음악

콜라가 아무리 좋아도 대중이 가장 많이 마시는 건 결국 생수잖아요

재미있는 건 재미없어요, 재미없는 게 재미있지

나는 대중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랍니다



한평생 한 악기와 동지처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음악에 평생을 바친 예술가는 오롯이 그만의 향기를 지닌다. 가야금과 함께한 세월만 60년, 창작 49년. 단 하루도 가야금을 연주하지 않고는 ‘흥’이 나지 않는다는 가야금의 명인. 오는 12월 말 국립국악관현악단 임기를 마치는 황병기(75) 예술감독을 만나 인생과 버무려진 음악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예술가의 날카롭고도 여유로운 눈빛. 세월 속에 켜켜이 쌓아올린 예술관은 누구를 만나든 독자적인 빛을 발한다. 일상의 소소한 대화에서 음악관, 인생관까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단칼 같은 답변을 쏟아냈다. 황 감독과의 인터뷰는 “나는 원래 인터뷰에 맞지 않는 사람이야”로 시작해 그가 요즘 심취해 있다는 공자의 ‘논어’에 대한 열띤 ‘강의’로 끝을 맺었다.

황 감독이 가야금을 처음 접한 것은 1951년 부산 피란 시절이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가야금 한 번 배워보라”는 한 친구의 말이 가야금과 첫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가야금 음색이 가슴을 파고드는데 정신이 몽롱했다. 엄청난 애인을 만난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가야금은 평생 그의 반려자가 됐다.

경기고 3학년 때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국악계 주목을 받았지만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50년대 당시에는 국악과가 없었고 음악을 생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기 때문에 법학도가 될 작정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가야금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대학 졸업 직후 작곡가 현제명 선생의 권유로 국내 처음으로 개설된 서울대 음대 국악과에서 가야금을 가르쳤다. 1974년부터 2001년까지는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85년부터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객원 교수로 있었다. 국내외 연주활동도 활발했다. 1964년 국립국악원의 첫 해외 공연이었던 일본 공연에서 가야금 독주자로 참가했고 1986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기도 했다. 1990년에는 평양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


-젊어서 다양한 일을 하셨고, 그러면서도 가야금을 평생 놓지 않으셨죠.

▶젊어서는 명동극장 지배인, 화학회사, 출판사, 영화제작도 해봤어요. 근데 뭘하든 음악은 항상 하는 거죠. 어떻게 생각하면 쉬우냐면, 우리가 직업이 뭐가 됐건 연애를 항상 하잖아요. LG 다니다가 삼성 다닌다고 연애 그만두나요? 대학생들 졸업한다고 연애 안 하나요? 연애는 항상 하는 거니까. 나는 가야금하고 연애한 셈이지. 근데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니까 애인(愛人)이 아니라 애물(愛物)이죠.

-지금도 매일 가야금 켜시나요.

▶가야금은 운동이에요. 내려놓고 쳐다만 보는 게 아니잖수. 가야금 뿐만 아니라, 모든 연주는 운동이에요. 육체로 하는 거죠. 육체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정신적인 건 거짓말이 가능하지만, 육체로 하는 건 반드시 티가 나요. 그래서 육체가 정신보다 훨씬 성스럽다는 거죠. 김연아가 한 달만 스케이트 안 타면? 큰일 나요. 매일 타야 돼요.



황 감독의 자택에는 25개의 가야금이 있다. 그는 “한번 인연을 맺은 가야금은 일생을 함께하는 것”이라며 “나보다 나이가 많은 고금(古琴)도 있다”고 웃었다. 가야금 연주는 매일 거르지 않고 2시간 정도.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제일 많이 연주하는 시간은 주로 밤 10시나 11시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 창작곡은.

▶나는 다 애착이 가니까 고를 수 없고,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곡은 침향무(沈香舞)죠. 인도 원산지의 향기 이름인데 동양에서 고귀하고 비싼 향을 뜻해요. 사실 우리나라 전통음악 100% 조선시대 음악입니다. 고려, 신라시대의 음악이 없죠. 그래서 내가 74년부터 전통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할 때, 신라음악으로 돌아갔어요. 신라의 춤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이 침향무. 침향이 서린 속에서 추는 춤이라는 뜻의 곡이에요. 조선조의 전통 음악과는 확연히 다른 구분되는 곡이라, 국내뿐 아니라 해외서도 인기를 얻었어요.

-좋은 창작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조용필의 예를 들게요. 언젠가 조용필이 한 인터뷰를 봤는데, 이제 감정을 빼고 불러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했어요. 내가 평상시 해온 말과 같아요. 안숙선 명창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감정을 빼고 노래 불러야 한다고. 쉬운 예를 들어봅시다. 코미디언이 무대 위에 올라서, 자기가 먼저 웃으면 사람 못 웃겨요. 코미디언은 쿨해야 해요. 배우가 진짜 울면 관객이 안 우는 것도 같은 이치에요. 상대 배우와 진짜 애욕이 생겼다면, 그 영화는 망치는 거라고요. 완전히 냉정한 마음으로 키스를 위한 연기를 해야지, 배우는 연기로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대중적인 작품은 안 하십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하죠. 원래 대중적인 걸 싫어해요. 나는 대중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고, 나를 광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 없습니다.



한번도 자신을 홍보해야겠다 마음먹은 적 없고, 뭐든 대중적인 것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국내 첫 음반(1978년)은 아직도 국악계 베스트셀러 앨범으로 손꼽힌다. 때로는 음반매장에서 국악앨범 중 1위를 차지할 때도 있다고. 30년의 세월을 거슬러도 끄떡없는, 시간을 타지 않는 국악 앨범이다.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인가요. 정신적 해독제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죠.

▶정신을 맑게 해준다. 영혼을 쓰다듬는다는 뜻이죠. 난 오락적인 음악을 안 합니다. 재미있는 건 재미없어요. 재미없는 게 재미있죠. 예를 들어 청량음료 중에 가장 달콤새큼한 게 콜라잖아요. 콜라를 아무리 좋아해도 결국 대중들도 가장 많이 마시는 건 생수예요. 아무 맛도 없는 것. 생수 같은 음악이 바로 내 음악이죠. 사실 사람들이 제일 먹고 싶어하는 것도 깊은 산속의 천연 약수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콜라가 좋아보이지만, 나는 깊은 산골의 약수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니까 내 음악은 재미가 없죠.(웃음)



재미없는 것이 재미있다는 역설. “대중들도 가장 좋아하는 건 콜라가 아니라 생수”라며 “요즘 사람들, 콜라를 생수처럼 마시면 몸 다 버릴 것”이라는 유머를 곁들여가며 그의 철학을 강조했다.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교류가 많은 편인데, 어떤 분들과 교류하시는지.

▶‘백기사’라고.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내가 백기사 공동대표예요. 그리고 경기고등학교(51회) 동창들 얼마 전에도 만났어요. 경기여자고등학교 51회 할머니들하고 가끔 만나서 밥 먹는 거죠. (만나는) 젊은 친구들은 정말 많아요. 첼리스트 장한나는 한국에 오면 꼭 만나서 밥을 먹죠. 우리는 반드시 밥을 먹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하거든.

-장한나 씨처럼 젊은 후배 음악인들과 교류도 많은 편인데, 앞으로 공연을 함께하실 계획이 있는지.

▶나는 일체 계획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라 내년도 계획이 현재 아무것도 없어요. 원래 계획하는 걸 싫어해요. 왜냐고? 그냥.(허허) 내년되면 뭐가 일어나겠지.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그때그때 충실하게 살아요. 국립관현악단 예술감독도 곧 끝날 텐데 ‘내일 끝나더라도 오늘은 영원히 있을 것처럼’ 할 겁니다. 그래도 장한나와 협연을 할 수 있는 적당한 기회도 찾고 있어요. 장한나 씨를 상당히 아끼는데, 행여 내가 그의 음악 생활에 해를 줄까 봐 항상 조심스럽긴 하지만.(웃음)

-요즘 국악계 후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젊은 연주자들이 테크닉은 정말 좋습디다. 내가 봐도 놀랄 정도로 연주를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하지만 남을 평가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내가 나이는 많지만, 젊은이들에게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립국악관현악단 감독직 임기를 마치면 섭섭하지 않을지.

▶임기 중에 있는 힘을 다해 해봐서 섭섭하지 않아요. 오히려 퇴임하면 작곡을 많이 할 겁니다. 사실 2008년에 국립국악관현악단 감독직을 떠나려고 할 때, 여자 단원들이 막 울었어요. 그래서 다시 3년을 한 겁니다. 하지만 사람은 물러날 줄 알아야 해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나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인가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건 보통 보배로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귀로 들어서 달콤한 음악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승화시키는 음악이에요. 그런 음악을 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일생을 걸었지, 귀로 들어서 좋은 엔터테이닝 음악을 위해서라면 일생을 걸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공자의 논어 중 1장을 들려주고 싶어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ㆍ이미 배운 것을 때때로 반복하면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닌가). 살다 보면, 가장 기쁜 건 결국 배우는 거예요. 아이 노인할 것도 없이, 배우는 게 가장 큰 기쁨이죠.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내일모레 시험인데 소설이나 영화 보면 논다고 뭐라고 하죠. 근데 그것도 공부예요. 박지성 같은 친구한테, 공차는 것도 노는 게 아니라 공부잖아요. 결국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재미없어서 못 살아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건 보통 보배로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귀로 들어서 달콤한 음악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승화시키는 음악이에요. 그런 음악을 하기 위해 하
나밖에 없는 일생을 걸었지, 귀로 들어서 좋은 엔터테이닝 음악을 위해서라면 일생을 걸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황병기의 인터뷰 中


황 감독은 논어에 푹 빠져있었다. 그는 “요즘 논어에 빠져 산다. 논어를 달달 외웠는데, 그 중 필요한 문장만 모아서 A4용지 5장에 담아서 다닐 정도”라고 했다. 그는 논어 번역본 5개와 영어본, 원문을 축약한 A4용지 5장을 간추려서 들고 몸에 지니고 있었다.

요즘도 책을 많이 읽느냐 물었더니 “(논어를 제외하고) 책을 별로 안 읽는다”며 “1년에 책을 100권 읽으면 뭐하나, 다 잊어버리니까. 읽고 싶은 책 몇 권만 선택해서 외우는 것이 낫다”고 했다.



-논어가 그렇게 좋으세요.

▶공자가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중요하고, 그보다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했어요. 뭘 하든 지식보다 좋아하는 것, 그 이상으로 즐기는 것이 최고라는 말. 시대를 초월한 진리의 말이 많이 담겨 있죠.



-좋은 구절 추천해달라.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ㆍ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ㆍ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화내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문장이 기가 막힌 게, 질문 형태라는 겁니다. ‘~하지 아니한가’처럼 말하는 방식도 민주성이 있죠. 내용도 그렇지만, 듣는 이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듯한 표현도 참 마음에 듭니다.



황 감독의 아내는 소설가 한말숙 씨다. 소설가 아내와의 예술적 공감대를 묻자, “집사람은 소설 쓰고, 나는 가야금하고”라며 웃었다. 두 사람은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그 중 미국 텍사스 ANM대학 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막내아들은 지금도 가야금을 연주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 나머지 자녀들은 전혀 가야금을 연주하지 않는데, 이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다고 했다. 장남은 ‘국가과학자’ 황준묵 씨다. 국가과학자는 연간 5억원씩, 10년간 50억원의 지원을 받는 영예로운 자리. 얼마 전에는 동양인으로서 최초로, 독일 최고(最古) 수학 잡지의 편집인이 됐다. 황 감독은 “아마 준묵이가 나보다 더 유명할 거다. (편집인 선정된 건) 나도 신문보고 알았다”며 “부자(父子)가 동시에 호암상을 수상한 것도 우리가 유일하다”며 활짝 웃었다.

여든을 바라보는 그에게 건강을 묻자, 황 감독은 “아직도 운전을 직접할 정도니, 문제 없다”고 했다. 실상 그는 준중형인 SM3를 직접 몰고 외출한다. “시력이 너무 좋아서 운전하는데 아직도 무리가 없다”는 그는 운전을 딱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비오는 날 밤에 운전해도 아무 문제 없을 정도로 거뜬하다. “80세가 돼도 그럴 것”이라고도 호언했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사진=안훈기자/rosedale@heraldcorp.com


황병기…
▶1936년 서울 출생
▶ 1959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 1959~63년 서울대 국악과
강사
▶1965년 워싱턴대 강사
▶ 1974~2011년 이화여대 한
국음악과 교수
▶1985년 하버드대 객원교수
▶ 1990년 평양 범민족통일음
악회 참가 서울전통음악단

▶ 2000년 단국대 명예음악
학 박사
▶ 2001~2006년 한국예술종
합학교 겸임교수
▶ 2006~현재 국립국악관현
악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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