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시즌이다. 마당발이라면 두 말할 것도 없겠지만 아무리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이맘 때쯤이면 대개 송년회 몇 개씩은 잡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송년회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술자리가 주류를 이룬다. 매년 비슷비슷한 송년회 자리가 이어지디 보니 지나고 나면 어떤 해에 어떤 송년모임을 했는지 특별한 기억이 없다. 시류에 따라 흥청망청이었거나 혹은 덜 그랬거나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송년회가 하나 있다. 때는 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 12월로 기억된다. 경제위기로 불우이웃에 대한 따뜻한 손길마저 줄어들던 엄혹한 시기였다. 당시 부장이던 모 선배의 주도로 뭔가 생산적인 송년회를 하자는 의견이 제기됐고 난상토론 끝에 송년회 비용을 모두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고 여기에 더해 1일 봉사활동을 하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부서의 막내인데다 ‘사회복지시설 줄어든 온정에 쓸쓸한 연말’ 기사를 취재한 필자가 실무적인 일을 맡았다.
장소는 서울시 관악구에 소재한 S보육원이었다. 당일 아침 일찍 전 부서원이 선물꾸러미를 한아름씩 안고 S보육원으로 달려가 추운 날씨도 잊은채 유리창도 닦고, 방도 치우고 세탁에 화장실 청소까지 궂은 일도 마다 않고 열심히 했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점심도 같이 나눠 먹고 ‘꽉 찬’ 하루를 보냈다. 저녁무렵 나올때는 송년회 비용에 각자 얼마씩 더 보태 성금을 전달했다. 재정형편이 좋지 않은 사회부로서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후 고사리 손길로 쓴 감사의 편지를 몇 차례나 받았다. 수십명의 아이들이 갖가지 색깔의 연필로 함께 쓴 ‘무지개빛 편지’였다. 좋아하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자꾸 떠올라 해마다 이런 송년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필자가 보낸 송년회 가운데 단 한번의 ‘일탈’이었던 셈이다.
요즘 직장인들의 송년회 트렌드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부어라 마셔라’하는 ‘음주 송년회’ 일변도에서 호텔 외식, 스크린골프, 와인바, 공연 관람 등 놀이모임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술자리를 갖더라도 검소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도 덩달아 검소(?)해진 것일까. 지난해의 경우 사회복지모금회가 세운 ‘사랑의 온도탑’이 1999년이래 처음으로 100도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94.2도에 그쳤다. 모금회에서 성금을 회식비로 사용한 불미스런 사건이 적발된 탓도 있었지만 각박해진 세상인심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올해도 광화문광장에는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져 있다. 몇도까지 올라갈까.
옛것은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는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연말에 기존의 송년회는 뒤로 보내고 색다르고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송년회를 한번 해보시기를 권한다. 그게 꼭 기부나 사회봉사가 아니어도 좋다. 소모적이 아닌 생산적인 모임이면 된다. 만약 거기에 따뜻한 마음을 더하면 잊을수 없는 송년회의 추억을 하나 가지게 될 것이다. 당신의 올해 송년회는 어떠신가요, ‘일탈하는 송년회’를 한번 꿈꿔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김대우 기자/dew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