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나는 죽은 목숨일세.”
한갓 시골 아전의 아들, 열다섯 살 황상이 다산 정약용을 만나 달라진 삶의 목소리다. 강진에 유배온 다산이 주막집에 연 서당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온 더벅머리 황상은 다산으로부터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의 가르침을 받는다. 소년은 그 말 한마디를 따라 70평생을 산다. 때론 불호령에 혼쭐이 나지만 칭찬에 고무되며 부지런히 갈고 닦는다. 그는 스승 다산에게서 삶의 길, 학문의 길을 본다. 다산은 ‘과골삼천’,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난 스승이었다.
황상은 다산이 해배돼 서울로 돌아간 뒤엔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며 초서와 시짓기에만 힘썼다. 늘그막에는 ‘일속산방’(좁쌀 한 톨만 한 작은 집)을 지어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출세를 위한 공부는 실패로 귀결된다는 것. 스승이 일러준 유인(幽人)의 삶을 지킨 것이다.
한문학자 정민이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을 통해 복원해낸 황상의 삶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곧다.
황상을 보면 그 스승이 보인다.
황상이 예순일곱 살에 쓴 시 ‘치원유고’는 1000수가 넘는 송나라 시인 육유의 시집을 한자 한자 베껴쓴 것이다. 이 역시 다산이 강조한 공부법이다.
다산이 강진 18년 유배 동안 키운 제자는 수없이 많지만 끝까지 스승을 진심으로 한결같이 섬긴 제자는 황상 한 사람뿐이었다. 일흔 나이에도 천릿길 발을 감싸고 다산의 묘를 찾은 그런 사람이다.
책은 다산의 유배생활과 황상의 야인의 삶이 함께 섞여 있다. 다산의 회혼식을 겸해 18년 만에 찾은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그 정점을 이룬다. 황상이 스승을 찾은 날 다산은 사흘 후 영면한다. 다산은 황상에게 꾸러미 하나를 준다. 규장전운책 한 권과 중국제 먹과 붓 하나, 부채 한 자루와 담뱃대 하나, 엽전 두 냥이었다. 그간 접어두었던 시 공부를 다시 시작하란 뜻이었다.
다산의 맏아들 정학연과 황상이 맺은 ‘정황계안’, 두 집안이 대대로 신의를 맺고 우의를 다지자는 사연도 감동이 적지 않다.
정민 교수 특유의 방대한 자료에 바탕한 단단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묘사와 서술에 힘입어 학문과 교유의 진진한 맛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