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의 작가 김별아가 역사에 가려진 또 다른 여인을 찾아냈다.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순빈 봉씨다. 왕조실록에는 봉씨에 대해 한 줄로 기록돼 있다. “요사이 듣건대,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혹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이로써 폐서인된 봉빈의 죄목은 나인과의 대식(對食)행위. 요즘 말로 동성애다.
작가의 10번째 역사소설인 ‘채홍’(해냄)은 지아비 문종의 사랑을 갈망했으나 벽에 부딪쳐 내내 상처 입고 무너진 여성의 비극적 종말을 보여준다.
작가는 봉빈의 금지된 사랑을 일종의 사회적 저항으로 본다. 사랑이라는 금기가 무겁고 위태로운 만큼 사랑은 가장 큰 저항수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가 삿된 행동으로 폐빈된 뒤, 세자빈 간택은 빠르게 진행됐다. 첫날밤부터 외면당한 봉빈은 문종의 마음이 열리길 기다리지만 갈수록 수미산. 성군에의 강박과 완벽주의에 빠진 문종에겐 아름다운 세자빈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조선 초기 궁 안의 동성애는 쉬쉬할 뿐 흔했다고 작가는 본다. “동성애가 선정적일 수 있으나 욕망이 통제되다 스스로 깨나가는 고통과 슬픔, 탈출 욕망을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다”는게 작가의 바람이다.
여성을 소재로 한 글쓰기를 본령으로 여기는 작가는 “승자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패자의 역사, 여성의 역사를 발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발굴되지 않은 여성 이야기를 두어 편 더 쓰고 싶다고 한다.
‘작가의 여자들’답게 봉빈은 처량맞게 그려지진 않는다. 풀기 센 꼿꼿함이 있다.
약자인 여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렇다고 남성들을 악인으로 단순 묘사하진 않는다. 오히려 남성의 다면성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려 한다.
문종은 그런 측면에서 연민의 정을 일으킨다. 성군 세종이란 완벽한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 강박적인 완벽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소설은 옛말이 무성해 종종 턱에 걸리지만 문맥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작가는 이를 ‘모국어의 신비’라고 표현한다.
작가의 세심한 글쓰기는 더욱 맛깔스러워지고 우리말을 다루는 솜씨가 한층 능숙해져 생생한 우리말의 소리와 뜻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감도 맛볼 수 있다.
역사소설로만 달려온 작가가 말하는 역사 이야기의 매력은 인간성의 본령을 파악하기에 더 적합하고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열려 있다는 것.
“1500년 전, 500년 전 살았던 얘기가 매력적이지 않나요? 아글다글하면서 살았던 모습이 보이거든요. 그런 걸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게 우리말이에요.”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