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분방한 필치로 정열적인 원색의 화폭을 선보여온 중견작가 안혜림이 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대표 손성례)에서 초대전을 연다. 이번이 24회 개인전으로,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계속된다.
이번에도 안혜림은 특유의 거리낌없는 붓질과 상상력으로 즐거운 작품들을 쏟아냈다. 붉은 하늘, 출렁이는 바다, 저마다의 꿈을 안고 생을 즐기는 사람들과 동물이 어우러진 그림은 따사한 그리움을 안겨준다. 보라색 갯바위에 낚시대를 드리운 강태공의 모습은 유유자적 그 자체며, 광안리 해안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의 가슴은 밝고 싱그럽다. 낭만과 꿈, 상쾌함이 용솟음치는 그림들이다.
안혜림은 밝고 대담한 색채와 활달한 필치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심각하지 않다. 대신 활기와 즐거움을 안겨주며, 그림 속 장소에 가보고 싶은 설레임을 선사한다.
그 역시 그림작업을 무척 즐긴다. 평소에도 언제나 연필과 스케치북을 소지하고 다니며 일상의 풍경을 끊임없이 스케치한다. 미처 스케치북을 준비하지 못했을 땐 작은 수첩이나 메모지에 그림을 그린다. 자연과 도시, 풍경과 사람 ,정물과 누드를 가리지 않고 크로키하듯 대상을 부지런히 스케치한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스케치나 드로잉이 캔버스에 옮겨지면 전혀 다른 양상의 그림이 전개된다는 점. 스케치에서 보이던 정교한 비례와 원근법은 사로지고, 자유분방한 색채와 구도로 ‘안혜림식 풍경’이 탄생한다. 그의 그림은 경직된 테크닉이나 관습화된 미술의 양식과 일정부분 거리를 두고 있는 게 특징이다.
이렇듯 제도권 미술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자유롭고 분방한 회화세계를 개척한 게 오히려 대중들에게 더 어필하고 있다. 더 신명나고, 더 솔직하고, 더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무르익은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때론 어린아이가 그린 듯 소박하다. 이러한 양상은 비례나 시점을 무시하고, 명암을 생략한채 화면을 평면화시키는데서 연유한다.
작가는 "블로 네루다가 그토록 사랑한 칠레의 섬마을 이슬라 네그라 (Isla Negra)! 네루다는 그 곳에서 ‘순수함의 심연’을 시로 노래했다.‘시가 나를 찾아 왔네’라면서. 내게 이슬라 네그라는 부산이다. 그림이 나를 찾아왔던 곳이다. 그림이 나를 처음 찾아온 그 때를 떠올리면 내 마음은 바람에 흩날리는 치맛자락처럼 설렌다. 그 그리움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해운대,동백섬, 송정, 광안리, 기장 ,대변, 청사포로 달려간다. 그리곤 그 곳의 바다에 으스러지도록 나를 안기고, 그 곳의 해안을 내 가슴 속에 아스라하게 품는다. 부산의 바다는 첩첩의 그리움과 겹겹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밝혔다.
풍어(豊魚)와 만선(滿船)을 닮은 안혜림의 거대한 캔버스에는 오늘도 작가의 무지개빛 삶의 파노라마가 즐겁게 출렁이고 있다. 02)549-3112 <사진제공 청작화랑>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