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얼굴에 머리카락만 삐죽 솟은 ‘동구리’가 등장하는 회화로 잘 알려진 권기수((權奇秀, KWON, Ki-Soo) 작가가 신작전을 열며 이같이 토로했다.
권기수(39)는 구글(Google)이 제프 쿤스를 비롯한 전세계 아티스트들과, 구찌 등 패션브랜드, 셀린 디온 등 뮤지션을 iGoogle의 홈페이지 아이콘으로 꾸미는 ’아티스트 테마 프로젝트’에 선정됐었다. 한국 아티스트 중 타이포그래피를 선보이는 안상수교수(홍익대)와 함께 권기수가 구글의 ’ iGoogle 아티스트’에 뽑혔던 것. 이에따라 구글에서 권기수(KWON, Ki-Soo)라는 이름을 치면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함께 그의 작품이 뜨며, 개인화된 Google 홈페이지의 배경화면으로 ’동구리’작품을 사용할 수 있다.
그가 이번에 새로운 실험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대표 도형태)에서 개막된 ’권기수Reflection:명경지수(明鏡止水)’전에는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이 총 망라돼 권기수 작업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권기수 작업은 흔히들 ’팝아트’ 또는 ’캐릭터 아트’로 여기기 쉬우나 그는 동양화적 감성에 뿌리를 둔다. 이번 전시는 ‘동구리’로 국내외를 종횡무진 누벼온 작가가 올해로 꼭 10년이 된 ’동구리 작업’을 스스로 돌아보며 제작한 ‘리플렉션(Reflection) 시리즈’가 다양하게 출품됐다. 신작 리플렉션 시리즈는 ‘허상의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담고 있는 작업이다.
즉 숨가쁘게 앞으로만 달려온 지금까지의 작업을 반성하며 자아를 스스로 비추어보는 시간을 가진 끝에 탄생했다. 신작에선 화자인 동구리와 주변 배경들이 화폭에 반사돼 지금까지의 작품 보다 더 풍부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주조색도 은빛, 금빛 등으로 은은하고, 물 속에 비친 동구리와 배경을 일일이 손으로 다시 그려냈기 때문에 전작들에 비해 제작시간과 공력이 두배 이상 들었다.
또 ’리플렉션’ 신작에는 일곱빛깔 무지개가 자주 등장한다. 물 속에도 이 무지개가 투영돼 신비감을 살렸다. 무지개는 동양에서 ‘허상’의 이미지로 꼽힌다. 권기수는 이 이미지를 수면에 반사시켜 또 다른 무지개를 만들어냄으로써 허상이 또 다른 허상을 만들어 내도록 했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1998년 첫 개인전에서 먹으로 표현한 인물 군상을 선보인 이래, 인물 드로잉을 꾸준히 시도하며 지금의 동구리와 비슷한 형상의 ’수묵 동구리’를 선보였다. 이후 실험을 거듭해 지금의 단순하고 현대적인 이미지의 동구리가 탄생한 것. 많은 평자들이 동구리를 ’현자의 모습’이거나, ’부처의 모습’으로 심오하게 해석하곤 하나 권기수는 "동구리는 곧 나를 대변하는 화자이자, 감정을 표현하는 대리인이다. 곧 나 자신"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대적인 감성을 드러내며, 똑 떨어지는 완결성을 보여주는 권기수의 ’동구리’ 연작은 좀더 파고들어가면 작가의 동양화적 사상과 감성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대학시절 접한 ’죽림칠현’ 이야기와 조선시대 화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등을 차용해 유유자적하는 삶,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오늘의 감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아울러 동구리를 에워싸고 있는 배경 또한 산수화, 사군자(매화, 난, 국화, 대나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어서 동양화적 감수성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리플렉션(Reflection)’ 시리즈에 대해 권기수는 "초기 작업이 자조적 행복함, 꽃밭에서 뛰노는 자아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많이 치중했고, 이후 작업은 정치적으로 세상을 등진 이들의 모습인 죽림칠현 이야기를 반영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여전히 예쁘고 즐거운 동구리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내 스스로를 반성하고자 ‘Reflection’ 시리즈를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화자인 동구리만 비추도록 작업했는데, 점차 확장돼 배경과 스토리 전체를 비추는 복잡한 구조가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작업은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만에는 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컬렉터도 생겨나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에서는 권기수의 평면 회화뿐 아니라 조각이나 설치작품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이는 누구나 공감할수 있는 컨템포러리 작품인 점과, 동양적 언어로 표현된 작업이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류지연 학예연구사는 "권기수의 작업은 화려한 색감과 장식적인 배경, 귀여운 인물 캐릭터로 잘 알려져 있다. 초기작업에서 보여지는 인물의 소외감, 고독감의 표현은 외부세계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자유분방한 삶을 영위하였던 죽림칠현의 현대적인 표현이었다"며 "최근 작업에서는 인물이 물에 비친 반사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작가의 희망을 담고 있다. 또 무지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허상이라는 사실로 인해 물에 반사된 무지개는 ’허상의 허상’을 상징한다"고 평했다.
이어 "원근감 없이 소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매화와 대나무가 만개한 화면은 전면화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에너지가 팽창하여 폭발하는 빅뱅과 같이 그의 화면은 내면의 에너지가 응축돼 화면 밖으로 팽창해나가고 있다. 화면의 구성방식도 적절하게 제어함으로써 전체적인 균형을 이뤄나가는 정반합의 태도를 취한다"고 분석했다.
최근들어 권기수는 2011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인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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